따로 쓰는 영어 이름이 없다. 외국 친구들은 내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한다. 그래서 대부분 앞 글자만 부르는데, 덕분에 나는 모두의 '형(兄)'이 된다. 물론, 그마저도 제대로 발음하는 친구는 흔치 않다. 서양 친구들에게 '형'은 정확한 발음이 어려운 단어여서, '히'와 '영'을 따로 읽을 땐 제대로 발음하던 친구들조차 둘을 연달아 발음하면 '융'이라 부르고 만다. '서'씨인데 영어로 '세오(Seo)'라 쓰는 게 어색해 가장 발음이 비슷한 Sir를 쓴 적도 있다. '경(Sir)'과 '형님'의 결합이라니. 정말 귀족이냐 묻는 사람이 있어 오래지 않아 다시 '세오'로 돌아왔다.
한때는 내게도 영어 이름이 있었다. 10여년 전, 영국에서 1년 넘게 산 적이 있다. 영어 학원에 다닐 적 쓰던 '벤'을 영어 이름으로 정했다. 인터넷 아이디의 앞 글자를 따서 지었다. 영국 생활 초기 두 어 달 이 이름을 썼다. 그 시절에 만난 친구들은 지금도 나를 '벤'이라 부른다.
내가 더는 '벤'을 버린 건 영국 친구 톰 때문이다. 어느 날 톰이 물었다. "벤, 너 원래 이름도 벤이야?" "아니, 내 이름은 따로 있어." "왜 아시아 친구들은 대부분 영어 이름을 따로 짓는거야?"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고보니, 아시아에서 건너온 친구들은 영어 이름을 따로 짓는 경우가 많았다. "음.. 서양 사람들이 발음하기 어려워하니 그런 것 아닐까?" 그러자, 톰이 되물었다. "발음을 제대로 못 하는 건 너희 탓이 아니야. 왜 우리 때문에 너희가 이름을 바꿔? 그런 이유라면 이름을 하나 더 만들 필요는 없는데 말이야." 외국인들이 발음을 어려워하면 괜히 미안해하던 기억이 겹쳤다. '영어 이름'은 내 안의 사대주의가 발현된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벤'에서 '형'이 된 게 그때부터였다.
시간이 꽤 흘렀다. 톰의 의문에 더는 공감하지 않는다. 우리가 영어 이름을 짓는 이유가 발음이 전부는 아니다. 본명이 타인에 의해 정해진 것이라면, 영어 이름은 본인이 정할 수 있는 것이다.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픈 '로망'의 실현을, 남의 눈을 의식한 선택이라 폄하할 수 없다. 생존이 이유인 경우도 있다. 영국에서 자란 한국계 친구는, 부모님이 한국 이름 사용을 권유했지만 스스로 영어 이름을 택했다고 했다. 서구 사회에 살면서 그들과 명확히 구분되는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 선입견을 주거나 차별의 이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름은 나의 것이면서 동시에 타인의 것이다. 호명하는 자의 입장을 고려하는 걸 불편하게 바라볼 이유는 없다. 게다가 요즘은 닉네임을 쓰는 일이 흔해졌다. SNS에서 쓰는 아이디, 회사에서 쓰는 닉네임은 '또 다른 이름'을 갖는 것에 거부감을 줄였다. 서양 사람들 이름을 발음하기 어려운 건 우리도 마찬가지다. 단지, 우리 쪽에서 더 노력했을 뿐이다. BTS 멤버들의 이름을 한국인보다 더 정확하게 발음하는 외국인들을 보며 만감이 교차한다.
이름을 두 개 갖는 걸 이상하게 여긴 톰은 운이 좋았다.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은 외국어를 따로 배우거나, 다른 언어의 이름을 가질 필요가 없었을 뿐이다. 10여년이 흘러 내린 결론은 그렇다.
지금까지 서형욱 a.k.a. 세오 형(Seo Hyung)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