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하거나 귀향하거나...갈 곳 없는 20대의 고군분투기

입력
2020.09.1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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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이모(24)씨의 하루는 '카페 지도'를 완성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하루 종일 좁은 방 안에만 갇혀 있을 수만은 없기 때문에 나온 고육지책이다.

학교 익명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으로 찾아갈 카페 순서를 정한다. 하지만 막상 가장 사람이 적을 것 같은 카페에 가면 벌써 사람들이 여럿 앉아 있는 경우도 있다. 예전 같으면 빈자리에 앉으면 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지난달 30일부터 강화된 사회적 거리 두기 2단계(2.5단계)가 시행되고 나서는 발길을 돌린다.

이씨는 10일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열심히 찾아갔는데 앉을 곳이 없으면 허탈하다"라며 "하지만 지체할 시간 없이 곧바로 2안으로 생각했던 다른 카페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평소에는 예쁜 사진 찍으러 가는 동네 작은 카페도 요즘은 자리 확보를 위한 눈치싸움이 치열하다"며 "거기 마저도 앉을 곳이 없으면 그땐 집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수도권에 사회적 거리 두기 2.5단계가 시작되면서 '카공족(카페 공부족)'들은 갈 곳이 확 줄어들었다.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에 이어 제과점마저 탁자 의자를 치워 버렸고, 학교 도서관을 비롯, 청년공간 등 공공기관도 문을 닫았다.

그러다 보니 대학생과 취업준비생(취준생)들은 카페를 찾아 나서거나 아예 집 안에만 머물거나 아니면 아예 지방의 고향 집으로 내려가는 등 각자의 방식으로 '코로나19 시국(코시국)'에 대처하고 있다.

①방 말고 갈 곳이 없다... 사실상 '자가격리' 방콕형


대학생 이모(25)씨는 "밖에 나가고 싶지만 무선인터넷 통신망인 와이파이가 안정적으로 잡히고 소음이 나지 않는 곳에서 온라인 강의를 듣기에는 집이 최선"이라고 했다. 실제 이씨와 함께 온라인 실시간 강의에 참여하는 학생 대부분은 집에서 듣고 있다. 이는 방역 당국의 지침을 따르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대형 카페들이 고객이 내부에 앉을 수 없도록 하는 바람에 갈 만한 곳을 찾는 일이 만만치 않아서다.

대학생 민모(24)씨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그는 "강의에 필요한 교재는 학교에서만 구할 수 있어 교재 사러 갈 때를 빼곤 집에만 머물고 있다"며 "방 말고 갈 수 있는 곳을 찾기 쉽지 않다"고 전했다.

코로나19로 대학 강의는 1학기부터 비대면 온라인으로 진행되고 있다. 2학기도 상황이 비슷한 것 같지만 내용을 들여다 보면 크게 다르다.

1학기엔 대학 도서관이나 동아리방과 같은 학교 공간, 가까운 스터디 카페 등 조용한 공간을 이용해 비대면 수강을 들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불가능해 졌다.

'방콕족'들은 동아리 활동, 조 모임까지도 비대면으로 바뀌면서 방에서만 시간을 보내다 보니 하루종일 다 합쳐도 몇 걸음 걷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고 말한다. 방 밖으로 나가는 시간이 거의 없다 보니 사실상 ‘자가격리’ 중이다.

단골 밥집 대신 포장이나 간편식으로 식사를 해결하고 헬스장을 가는 대신 홈트레이닝으로 운동을 한다. 코인 노래방 대신 블루투스 마이크로 방 안에서 노래를 부르며 취미 생활을 대체하며 코시국을 버티고 있다.

하지만 열악한 환경의 방에서 하루 종일 머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햇빛도 잘 들지 않고, 환기도 충분히 되지 않는 좁은 방에서 집중해서 공부하기가 만만치 않다.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2018년 주거실태 조사'에 따르면 청년 가구 열 가구 중 한 가구(9.4%)는 최저주거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집에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②학교는 넓고 갈 곳은 많다...그래도 학교로형


학교 도서관은 문을 닫았지만 그래도 틈새 공간을 찾는 이들이 있다.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대학생 박모(25)씨는 학생회관에서 아르바이트(교내 근로 장학생)를 했던 덕분에 학생회관 2층 로비에서 공부가 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2층 로비는 취업 준비 공간으로 쓰던 곳인데 비대면 강의로 바뀌면서 이용하는 학생이 거의 없다.

박씨는 "2층 로비는 오후 5시까지 문을 열기 때문에 사회적 거리두기가 2.5단계가 되면서 칸막이 책상과 5,6인용 테이블이 놓여져 있는 로비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며 "이곳이라도 이용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전했다. 한편 학교 측은 이곳마저 찾는 이들이 늘 것을 예상해서인지 며칠 전 5,6인용 탁자에 한 명씩 앉으라는 지침을 써붙여 놓았다고 한다.

주로 도서관, 카페에서 공부하던 대학원생 김모(26)씨는 요즘 평소에는 가기 꺼렸던 대학원생 연구실을 찾는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2.5단계가 되자마자 단과대 사무실에 연락해 출입증을 만들고, 연구실로 짐을 옮겼다. 하지만 연구실에 갈 때마다 마음은 무겁다. 긴 장마 탓인지 연구실 곳곳에는 곰팡이 피고 환기 상태가 썩 좋지 않다.

눅눅한 지하 연구실보단 좁더라도 방이 낫지 않을까? 김씨는 "집에선 그냥 쉬거나 잠만 자고 밖에서 공부하는 게 습관이 됐다"며 "그리고 집에서 공부를 하려면 의자나 와이파이, 에어컨 등도 있어야 하는데 그것도 사다 놓지 않았고 지금에서야 그걸 사자니 적지 않은 돈이 들 것 같아 망설여 진다"고 밝혔다.

그러다 보니 100%는 아니어도 지하 연구실이라도 올 수 있는 게 고맙게 느껴질 정도. 김씨는 "공기청정기를 틀고, 환기를 자주하며 연구실에서 공부를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③빈 틈을 노린다...개인 카페 찾아 헤매는 방랑형


취업준비생 박모(25)씨는 방 안에 있는 게 답답할 때면 갈 만한 카페를 물색한다. 고개만 돌려도 보이는 프랜차이즈 카페는 대상에서 탈락. 구글과 카카오 등을 활용해 '환기가 잘 되고 사람이 없으면서도 공간이 넓은 개인 카페'를 고르는 게 목표다. 콘센트 이용 여부나 소음, 이용할 수 있는 시간 등도 카페를 고르는 중요한 기준이다.

그러나 SNS에 올라오는 사진과 후기만으론 적합한 카페를 고르는 데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SNS에는 괜찮은 공간으로 보이지만 실제와는 다른 경우도 많다. 박씨는 "결국은 평소 가봤던 카페 중 사람 없는 곳이나 친구들에게 추천 받은 카페로 간다"라고 말했다.

게다가 그나마 반겨주던 개인 카페도 심심찮게 찾아오는 카공족들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실제 사회적 거리두기가 2.5단계로 상향된 뒤 연희동의 한 카페에는 "노트북 등 이용 시 3시간 이상 이용하지 말아 달라"는 안내문이 처음 붙었다.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는 문 여는 시간을 이용하거나 음료 가격이 비싼 카페에 가는 등 나름의 '꿀팁'이 공유되고 있다.


④코로나19 안전지대인 고향 앞으로...귀향형


공부할 공간을 찾아 아예 '고향 앞으로'를 선택하는 이들도 있다. 강의는 전면 비대면이고, 스터디나 조 모임도 코로나19가 잠잠해 질때까지 미뤄졌다. 게다가 기숙사 운영이 중단됐기 때문에 비싼 월세내며 학교 주변에 머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대학생 이모(24)씨는 이달 초 전북 정읍 고향 집에 내려갔다. 수도권에 비해 코로나19 확진자가 적어 비교적 안심되고,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카페 이용이 자유롭기 때문이다.

강의는 전면 비대면 온라인으로 이뤄지고, 스터디나 조 모임도 코로나19가 잠잠해질 때까지 미뤄졌다. 게다가 기숙사 운영이 중단됐기 때문에 비싼 월세 내며 학교 주변에 머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씨는 "서울에 올라온 후 이렇게 오래 고향집에 머무는 건 처음"이라며 "친구들이 보고 싶지만 집중해서 자격증 공부하기엔 내려오는 게 낫다"고 말했다. 이씨 부모님도 그의 귀향을 반겼다.

이씨의 일상도 서울에서 혼자 지낼 때보다 훨씬 안정적이다. 조용한 집 근처 카페에서 공부한 뒤, 퇴근하는 부모님과 함께 집밥을 먹는다. 반려견과 산책하고, 동생과 놀다 보면 하루가 마무리된다.

이씨는 추석까지는 고향에 머물 것 같다고 했다. 어차피 추석에는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려던 참이었고, 추석 이후 자격증 시험이 있는데 막판 집중해서 공부하기에는 어수선한 서울보다는 고향집이 더 좋을 것 같다는 판단에서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11일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의 연장 여부를 "며칠 (코로나19) 상황을 더 보고 방역 전문가들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결정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일부에서는 이번 주말까지 코로나19 상황이 안정 상태에 들어서면, 추가적인 거리두기 연장은 필요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11일 0시 기준 신규 확진자는 176명으로 9일째 연속 100명대를 유지하고는 있지만, 최근 일주일 사이에는 가장 많은 수를 기록했다.

이번 주말이 지나면 공간을 찾기 위한 청년들의 고군분투도 끝날 수 있을까.







이은기 인턴기자
박서영 데이터분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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