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시절 의원실 불려 다니던 윤영찬, '최고 갑' 되니 변했나

입력
2020.09.10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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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 들어오라 해요" 문자 논란
국민의힘 "與 포털 장악 민낯 드러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해당"


윤영찬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포털 초치(招致) 문자’를 둘러싼 논란이 심상치 않다. 국민의힘은 의혹만 무성했던 여당의 포털 장악 민낯이 드러난 것이라고 주장하며, 민간 회사에 대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와 청탁금지법(김영란법) 위반 여부 등을 따지겠다고 별렀다.

9일 국회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국회의원이 현안에 대한 입장 등을 듣기 위해 기업관계자와 만나는 것 자체가 드문 일은 아니다. 국민의힘 의원실 관계자는 “여당이든 야당이든 기업 대관(對官) 담당자들에게 의원실로 와서 현안에 대해 설명해 달라고 요구하는 일은 흔하다”며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대관 담당자들이 의원실에 수시로 찾아 오기도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의원이 기업의 결정과 업무를 비판하고 항의하려는 의도로 담당자를 '소환'한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윤 의원은 국회 과학기술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소속이다. '카카오' '네이버' 같은 민간 포털업체가 과방위의 피감 기관은 아니지만, 과방위에서 다루는 법안, 정책에 따라 업체가 흥할 수도, 망할 수도 있다. 대관 담당 기업 관계자들이 각 상임위 소속 의원과 보좌진에게 꼼짝 못하는 이유다.

여당 소속인 윤 의원은 '갑 중에서도 갑'으로 꼽힌다. 현재 민주당은 과방위를 비롯한 모든 국회 상임위에서 재적 위원 과반을 점하고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각종 규제 법안을 통과시켜 기업 활동을 옥죌 수 있다. 국정감사 때 카카오나 네이버의 대표나 임원을 증인 혹은 참고인으로 출석시켜 호통치거나 망신을 주는 것도 가능하다. 한 국민의힘 의원은 “기업이 협조하지 않으면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허가를 내주지 않는 등 보이지 않게 불이익을 주는 방법이 많다”고 귀띔했다.

동아일보 기자였던 윤 의원은 네이버 출신이다. 2008년부터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캠프에 합류한 2017년까지 네이버에 재직하며 주로 뉴스 편집과 대관 업무를 맡았다. 의원실에서 호출하면 '들어가야' 하는 위치에 있던 당사자였다는 얘기다. 포털의 뉴스 배열이 사람 편집자가 아닌 알고리즘을 통해 이뤄지는 것을 비롯해 포털 뉴스 편집의 생리를 몰랐을 리도 없다.

윤 의원은 9일 사과하면서 "제가 의문을 갖고 묻고자 했던 것은 뉴스 편집 알고리즘의 객관성과 공정성이었다"고 했지만, 윤 의원이 문자 그대로 '묻기만 하려고' 카카오 담당자를 부른 것인지에 대해선 의문이 남는다. 한 정보기술(IT) 업체 대관 담당자는 “정말 몰라서 물어보려 했던 게 아니지 않나. 영향을 미치려던 의도로 비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비상대책위-중진의원 회의에서 “지금이 보도지침 시대, 언론통제 시대도 아닌데 의원이 대놓고 (포털 관계자를) 국회에 들어오라 말라 얘기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한 태도이고 서슬 퍼런 갑질”이라고 꼬집었다. 판사 출신인 김기현 의원은 “윤 의원이 과방위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와 강요죄에 해당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과방위 소속 의원들은 기자회견을 열어 “윤 의원의 행위는 사죄로 마무리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라며 윤 의원의 과방위 사임과 의원직 사퇴를 촉구했다. 국민의힘 원내 관계자는 “당내 포털장악문제 특별대책기구를 만들어 끝까지 파헤치기로 했다”며 “필요하다면 포털장악 관련 국정조사도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이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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