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극우와 결별할 수 있을까

입력
2020.09.09 20:00
24면

편집자주

‘김영화의 정치행간’은 의회와 정당, 정부와 청와대 등에서 현안으로 떠오른 이슈를 분석하는 코너입니다. 치열하게 다투다가도 타협을 이끌어내는 게 정치입니다. 그 이면의 합의와 조정 과정을 따라가며 행간 채우기를 시도합니다.


지난 4ㆍ15 총선 당시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참패의 원인을 꼽으라면 크게 세 가지 장면이 떠오른다. 첫째, 자유한국당 시절부터 시작된 급속한 우경화다. 반문재인 투쟁을 이유로 태극기 부대가 주최하는 집회에 참석하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이들을 국회로 끌어들이기까지 했다. 압권은 황교안 대표가 청와대 앞 단식장을 찾아온 극우의 아이콘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담임목사와 손을 맞잡는 장면이었다. 둘째, 선거 1주일 앞두고 터진 차명진 후보의 세월호 유가족 폄훼 발언이다. 더 큰 문제는 ‘탈당 권유’라는 당의 미온적 대처였다. 공당이 혐오 발언을 일삼는 극우세력과 확실히 선을 긋지 못한다는 인상을 줬다. 셋째, “기존 거대 야당을 중심으로 태극기를 들었던 여러분 모두가 힘을 합쳐달라”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옥중 서신이다. 황 대표는 “반가운 선물”이라고 반겼지만 보수결집은커녕 탄핵ㆍ친박 정당 이미지만 소환했다.

코로나19 확산 위험에도 강행된 8ㆍ15 광복절 집회는 세 가지 장면의 데자뷔였다. 전광훈 목사를 필두로 숨죽이고 있던 태극기 부대가 주최한 집회에는 총선 다음 날 자유한국당을 탈당한 차명진 전 의원은 물론이고 김진태 민경욱 등 원외 친박 정치인까지 보수 진영 극우 성향 인사들이 총집결했다. “(정부가) 바이러스 균을 우리 교회에 갖다 부어버렸다”(전광훈) 식의 황당무계 발언도 달라진 게 없었다. 상식과 정의 대신 증오와 적대의 정치에 물든 수구적 행태도 여전했다. 코로나 검사를 위해 임의동행하려는 경찰을 상대로 “내가 3선 의원 출신이야”라며 갑질하는 모습이나 코로나 병상에서 유튜브 방송을 하는 기이한 행동이 속출했다. 극단주의 세력과는 화합과 공존이 어렵다는 피로감은 보수 정당인 국민의힘 지지율이 곤두박질치는 결과로 이어졌다.

주호영 원내대표가 라디오 방송에 나가 “소위 사회에서 극우라고 하는 분들, 당은 저희들과 다르다”며 거리 두기를 시도했지만 허사였다. 국민의힘이 광복절 집회에 대해 사전엔 물론이고 코로나19가 재확산된 이후에도 명확한 입장을 내지 않은 것이 ‘집회 방조론’ 공격의 빌미가 됐다. 핵심 지지층의 여론을 챙기느라 극우세력과의 선긋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했다는 주장은 금세 힘을 발휘했다. 특히 집회를 방조한 것은 아니더라도 전광훈을 태극기 집회의 스타로 만든 일등 공신은 바로 보수야당 아니냐는 일종의 원죄론 앞에선 마땅한 반론조차 내놓지 못했다.


‘태극기 부대는 집토끼’ vs ‘극우는 계륵’

그렇다면 국민의힘은 왜 확실하게 극우세력과 선긋기를 못하는 걸까. 무엇보다 아직도 적지 않은 의원들이 광화문 집회에서 반정부 시위에 나선 이들이 국민의힘 핵심 지지층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일부 극우적 색채를 가진 사람들이 있지만 광화문 시위대 전체를 극우로 매도해선 안 된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영남권의 한 중진 의원은 “광화문 집회 세력이 극우라는 건 민주당의 프레임일 뿐”이라며 “이들의 절대 다수는 문재인 정부의 실정을 지적하기 위해 나온 애국자들”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적극적 지지층이 벌이는 광화문 집회에 가세는 못할망정 적어도 찬물은 끼얹지 말아야 한다는 기류가 있다.

극우세력도 결국은 우파 진영의 지지자인데 굳이 절연까지 해야 하냐는 생각도 팽배해 있다. 산토끼 잡는 것 못지 않게 집토끼가 도망가지 않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논리다. 특히 당 주류인 영남 다선 의원들 사이에선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의 중도 포용ㆍ외연 확장 전략이 보수의 가치를 버리고 진보의 가치나 쫓아다니는 본말전도 행태라는 냉소와 회의론이 적지 않다.

반면 극우세력 영향력이 미미하다는 건 이미 드러났고 이번 기회에 이들과 절연해 중도로 외연을 확장해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이들은 극우세력을 큰 쓸모나 이익은 없으나 버리기는 애매한 계륵 정도로 여기는 분위기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극우세력과 손 잡았다가 궤멸적 참패를 기록한 4ㆍ15 총선 결과가 확실한 교훈을 줬다. 수도권의 한 초선 의원은 “극우세력은 확장성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 총선을 거치면서 드러났다”며 “이번 광복절 집회를 통해 우리 당이 극우와 손을 잡아서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보다 분명하게 깨달았다”고 말했다. 지난 6월 발표된 갤럽 조사에서 국민의힘 비호감도가 69%로 호감도 18%의 네 배에 가깝다는 점도 결국 극우세력과 연계 때문이라는 게 이들의 시각이다.

온 국민의 방역 노력은 아랑곳하지 않고 광복절 집회를 강행한 극우세력의 막무가내 행태는 “썩은 피는 내보내고 새 피를 수혈해야 보수가 더 건강해진다”(하태경 의원)는 주장에 힘을 실어준 측면도 있다. 또 다른 수도권 초선 의원은 “광복절 집회를 거치면서 지지율은 떨어졌지만 대선 전에 이런 일을 겪어 오히려 다행”이라며 “극우로는 안 된다는 일종의 예방주사 맞은 셈 치면 된다”고 말했다.


본격적인 극우 세력은 박근혜 탄핵때 등장

극우는 우파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배타적 편가르기는 물론 반사회적 행동이나 폭력도 불사하는 극단적 이념 성향을 말한다. 민주주의, 다원주의, 법치주의도 이들에게는 목적 추구를 방해하는 걸림돌일 따름이다. 이런 극우가 기존 제도권 정당과 섞일 수 없다는 건 당연하다. 실제로도 우리나라 보수 정당에서 극우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군사정권을 제외하면 노태우, 김영삼, 이명박, 심지어 박근혜 정부 시절에도 보수 정당은 늘 중도로의 외연 확장을 통해 집권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런 구도에서 극우세력이 보수 정당에 편입될 여지는 적었다. 보수가 오랫동안 대한민국의 주류로 있는 동안 극우는 존재하지 않았던 정치 DNA였다.

전문가들은 본격적인 극우세력의 등장 시기는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이 무렵부터 자유우파 결집론이 힘을 얻으면서 극우 유튜버, 태극기 부대가 보수 정당과 적극적으로 손을 잡기 시작했다. 정치컨설팅그룹 ‘민’의 박성민 대표는 “압도적 국민 여론 속에 탄핵소추안이 인용되자 보수 진영에 리더십 공백이 생겼다”며 “그 틈을 이용해 자유우파 결집론이라는 퇴행적 이념 속에 태극기 부대로 대표되는 극우세력이 정치 무대로 들어왔다”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국민의힘이 극우세력과 절연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비정상의 정상화’ 과정이라는 것이 박 대표의 지적이다.

극우세력의 규모나 영향력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다만 극우세력의 목소리가 과잉 대표되고 있다는 분석은 총선 결과로 뒷받침된다. 지난 4월 총선에서 친박 계열의 우리공화당과 친박신당은 각각 0.74%와 0.51%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전광훈의 기독자유통일당은 1.83%를 얻어 2016년 총선 때의 2.63%보다 오히려 후퇴했다. 한때 광화문을 휩쓸며 보수의 선봉장인 것처럼 행동했던 극우세력이 아주 시끄러운 소수에 불과했음이 드러난 것이다.


김종인 체제서 극우 입지 줄었지만 결별은 장담 못해

김종인 비대위가 들어선 뒤 보수 야당에서 극우의 입지는 확 줄었다는 게 중론이다. 최근 국민의힘으로 당명을 변경하고 정강정책에 진보적 의제를 포함할 때나, 김 위원장이 광주에 내려가 보수 정당이 저지른 혐오와 선동 발언에 대해 무릎 꿇고 사죄할 때 당내에서 조직적 저항이나 반대가 없었던 것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다. 김종인 비대위가 중도로 외연을 확장하고 극우세력과 거리를 두자 지지율이 상승 반전하기 시작한 것을 지켜봤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정부의 부동산 실정을 조목조목 비판한 초선 윤희숙 의원의 본회의 5분 발언이 호평을 받자, 광장으로 돌아가 극우세력과 손 잡는 대신 원내에서 견제 야당 역할만 제대로 해도 유권자의 마음을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을 회복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극성스러운 태극기 부대에 위축돼 할 말을 못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공개적으로 극우세력과 결별을 요구하기 시작한 것도 달라진 모습이다. 3선의 하태경 의원은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가 “더더욱 강력하게 당 내부에서 (극우세력과의) 단절을 얘기해야 한다”며 “우리 내부의 잘못된 과거는 다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선 잠룡인 원희룡 제주지사도 최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보수의 이름과 가치를 참칭하며 공동체를 위험에 빠뜨리는 일체의 시도는 우리 당과 지지자들이 나서서 막아야 한다”며 극우단체가 추진 중인 개천절 집회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극우세력의 공생관계가 완전히 단절됐다고 보는 국민은 아직 많지 않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의 지적대로 ‘극우는 현찰이고 합리적 보수는 어음’이라는 인식이 남아 있는 한 언제든 수구보수로 회귀할 가능성은 열려 있다. 또 아직은 탈극우 노력이 김종인 위원장이 지휘하는 ‘지도부 주도형’ 개혁에 그치고 있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당원과 전통적 지지층으로까지 당의 체질 변화가 뿌리 내린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김종인 체제에서 지금보다 더 확실하게 극우세력과 선을 그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이달 중순 시작하는 당무감사를 통해 극우 색채가 짙은 원외 당협위원장들을 걸러내고, 극우세력이 예고한 대규모 개천절 집회에 대해서도 확실하게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박성민 대표는 “음식에서 이물질을 골라내듯 극우와의 결별이 없으면 국민의힘의 미래는 없다”고 단언했다. 박형준 동아대 교수는 “일부 보수 유튜버나 교조적 인식을 가진 분들의 목소리가 큰 것은 사실이지만 수적으로 많지는 않다”며 “자유민주주의와 공화주의로 무장한 주류 세력이 교조적 우파들과 논쟁을 통해 보수의 가치를 재정립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영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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