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동원 해법의 실마리

입력
2020.09.09 18:00
26면
日 총리 교체로 한일관계 개선 기대감
징용 문제 복안 없이 갈등 풀기 어려워
국내 입법 통한 해법 적극 검토해 볼만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이달 중순 일본 총리 교체를 앞두고 한일 관계의 변화를 기대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새 총리가 아베의 잔여 임기를 채우는 1년 한시 지도자인데다 '아베 정권 계승'을 표방하는 현 관방장관이 유력해 현재로서는 비관론이 우세한 듯하다. 하지만 스가 장관이 아베 총리처럼 이념지향적이지 않아 취임 후 지지율 상승을 기반으로 중의원 해산 선거까지 치러 입지를 다지면 관계 개선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이 없지 않다.

지도자 교체는 양국 관계를 새롭게 할 여건이다. 그러나 한일이 당면한 문제 해결을 위해 능동적으로 움직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개선을 기대하기 어렵다. 한일 갈등을 풀어야 한다는 것은 미중 갈등, 북한 비핵화 문제 등 역내 안보 불안 해소라는 거창한 이유에만 있지 않다. 양국 교류는 얼어 붙기 전까지 매년 늘어 한해 무역량이 850억달러를 넘었고, 관광객이 1,000만명 이상이었다. 웬만한 이유로는 되돌리기 어려운 선린호혜관계이고, 이런 관계를 유지 발전시켜 나감으로써 얻을 이익도 막대하다.

강제징용을 둘러싼 갈등을 푸는 것이 최우선이라는 것에는 누구나 동의한다. 이 문제의 역사적인 원인 제공자는 일본이지만, 오랫동안 해결된 것처럼 보였던 사안을 다시 심각한 논쟁거리로 부각시킨 건 한국이라는 점 또한 분명하다. 지금까지 서로 떠넘기듯 해결을 미뤄온 양국 모두가 일정한 책임을 떠안는다는 자세로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하는 이유다.

강제징용 판결에 반발해 일본이 실시한 수출규제 해제가 단초라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러려면 일본 정부가 이 문제를 단지 청구권협정의 문장에만 천착하기보다 인도적인 관점으로 보도록 시야를 넓혀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할 일도 적지 않다. 징용 문제와 관련해 강제 압류된 한국내 일본 자산의 처분이 진행되기 전에 문제를 해결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 "언제든 일본 정부와 마주 앉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말만 되풀이해서는 책임 전가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물론 법에 따른 절차를 정부나 시민사회가 이래라저래라할 수 없다. 지난 정권의 사법 거래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다만 그런 위기감을 사법부도 공유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대법원이 일본기업에 배상 판결을 내린 마당이어서 정부의 운신의 폭이 좁다. 그래서 지난 국회에서 제기되었던 것이 입법을 통한 해법이었다. 한일 기업과 국민 기부금으로 재원을 조성하자는 문희상 전 국회의장의 '1+1+α'안은 찬반 논란이 오가던 중 국회 폐회로 없던 일이 돼 버리긴 했어도 일본 정치권에서도 긍정적인 반응이 나온 방안이었다.

이 법안은 소멸되지 않았다. 그 내용을 그대로 받아 야당에서 21대 국회에 제출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재원 조달 방식에서 약간 차이가 나지만 마찬가지 대위변제 방식으로 관련 제3자가 신탁금을 내 문제를 해결하는 재단 설립 법안을 최근 여당에서도 내놓았다는 점이다. '배상금의 재원은 일본 정부 및 책임 기업이 손해배상의 취지로 신탁한 신탁금에서 지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일본기업에 대한 강제집행에 대해 이해관계가 있는 제3자가 배상금 상당액을 재단에 공탁'할 수 있도록 해 이 재원으로 시급한 피해자 구제를 가능하게 한다. 또 대위변제한 제3자는 일본 기업에 구상권 청구가 가능해 일본의 배상 책임을 묻는 대법원 판결의 취지는 유지했다.

강제징용 문제를 풀기에 입법만큼 실효성 있는 방식이 없다면 두 법안 모두 충분히, 그것도 서둘러 논의해볼 만하다.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국회나 정부의 열의, 여론의 관심에 달렸다.

김범수 논설위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