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취미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는다. 물으면서 이미 듣고 싶은 대답은 있는 눈치다. 특정 장르의 클래식 음악을 즐겨 듣는다, 다른 사람 연주를 들으러 다닌다 같은, 흔히 클래식 연주자들에게 기대할 법한 대답들이다. 하지만 내 취미는 아빠와 조조영화 보러 가는 일이다. 그것도 액션 어드벤처물을 좋아한다.
'어벤져스' 시리즈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 봤다. 토르 편을 봤을 땐, 토르를 이해하기 위해 북유럽 신화에 대한 책을 구해다 모조리 읽기도 했다. 영화관을 나설 때면 꼭 영화관 안의 영화 브로슈어를 챙긴다. 다음에 볼 영화를 고르기 위해서다. 어느날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아빠 손에 브로슈어가 한가득이었다. 그건 영화에 대한 정보가 아니나 딸에 대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내 취미를 아는 아빠가 한가지 제안을 했다. 하루 연습이 다 끝나면 1시간씩 러닝머신에서 달리기를 하며 영화를 보자는 것. 아빠는 아무래도 운동을 좀 시키고 싶으셨나보다. 피아노란, 음악이란, 아니 다른 그 무엇이라 해도 가장 중요한 건 체력일테니까.
운동을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나는 좋아하는 영화를 많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흔쾌히 그러자고 대답했다. 매일매일 1시간씩, 열심히 뛰었다. 그런데 곧 문제가 생겼다. 매일매일 열심히 달리다보니, 내가 좋아하는 영화 리스트가 다 소진된 것.
액션 어드벤처물을 떠나 다른 장르의 영화들을 보기 시작했다. 예전 같으면 잘 보지 않았을, 좀 까다로운 법률 문제를 다룬 외화도 보게 됐다. 달리기를 하면서 그 영화들을 한편, 두편 보다보니 어느새 그 대사들을 외우게 됐다.
화면 속 작은 자막을 보면서 달리기를 하면 위험하기 때문에 상황에 맞춰 대화를 통째로 듣고 외우는 식으로 영화를 이해했다. 달리기를 하면서 본 영화는 오기가 나서 대사가 귀에 들릴 때까지 돌려보곤 했다. 홈스쿨링을 하면서 이런 걸 취미 삼아 한 것도 벌써 7년이나 됐다.
줄리어드 음악원을 갔다 하니 많은 분들이 영어 공부를 궁금해하신다. 그 어려운 곡들을 연주하는 연습만으로도 벅찰텐데, 어떻게 따로 시간을 냈느냐는 질문들도 하신다. 개인적으로 학원이나 어학원을 따로 다닌 적은 없다. 런닝머신 위에서 외국 영화를 보며 들은 영어, 그게 전부다. 그 실력으로 토플(TOEFL) 시험을 치렀다.
영어 공부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는 분들에게 자칫 누가 될 수 있는 얘기라는 걸 잘 안다. 하지만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그저 시작하자는 것이다. 영화 보는 취미는 영어 성적을, 유학을 의식한 게 아니었다. 그저 영화가 재미있어서, 운동까지 겸하려다, 뛰면서 자막을 볼 수 없으니, 그렇게 한 것이다. 영어 뿐 아니라 모든 일이 그런 것 같다. 우선 시작부터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