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 태풍에 원전 6기 정지, 안전 체계 작동이라지만...

입력
2020.09.07 17:11
고리ㆍ신고리ㆍ월성  잇따른 정지로 불안
원인은 송전설비 이상으로 추정 
과부하ㆍ전원차단 방지 위한 자동 조치 
"사고 아니라 안전 대응 위해 멈춘 것"
원전 송전설비 관리 강화 필요성도

이달 들어 잇따라 불어닥친 태풍 '마이삭'과 '하이선'의 영향으로 원자력발전소가 멈춰 서면서 해당 지역 주민들을 중심으로 불안감도 확산되고 있다. 일단 전문가들은 이번 사고에 대해 다행히 원자로를 비롯한 핵심 장치가 아닌 원전을 오가는 송전선로에 문제가 생긴 것으로 보고 있다. 원전은 오히려 사고를 막기 위해 안전 체계가 작동됐다는 진단이다. 하지만 앞으로 태풍이 더 강해지고 잦아질 것에 대비해 송전설비도 철저한 점검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7일 한국수력원자력과 원자력안전위원회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 38분 경북 경주시 월성 2호기, 9시 18분 월성 3호기에서 터빈발전기가 자동으로 정지됐다. 원안위에선 이에 따른 방사선 영향은 없으며, 발전소의 안전 상태 유지도 확인했다고 밝혔다. 터빈 정지 원인에 대해 원안위는 태풍 하이선의 영향으로 송전설비 일부에 이상이 생겼기 때문으로 추정하고 있다.

터빈발전기는 핵분열반응의 열을 받아 발생한 증기로 날개를 돌려 나오는 힘을 전기에너지로 바꾸는 장치다. 이렇게 생산된 전기는 송전선로를 타고 발전소 밖으로 공급된다. 송전설비에 문제가 생기면 전기를 내보내지 못해 원자로에 에너지가 쌓이고 과부하가 걸릴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 원전은 송전에 이상이 생길 땐 발전을 멈추도록 설계돼 있다. 한수원과 원안위는 이날 월성 2·3호기의 터빈이 발전을 정지한 게 이 때문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원안위 관계자는 다만 “구체적으로 송전선로 어느 부분이 문제였는지는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

지난 3일 태풍 마이삭이 한반도를 강타했을 때 부산 기장군 고리 3·4호기, 신고리 1·2호기의 원자로가 자동 정지한 것도 비슷한 상황이다. 발전소 안팎 송전설비 어딘가가 마이삭 때문에 문제가 생겼고, 그에 따라 송전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자 원전이 자체적으로 멈춰섰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일각에서 오해하는 것처럼 원전이 고장 난 게 아니라 반대로 안전 체계가 설계대로 작동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태풍 마이삭 때 고리 1·2호기의 비상디젤발전기 작동 역시 마찬가지다. 고리 1·2호기는 각각 영구정지, 정비 중이어서 전기를 생산하지 않지만, 원자로를 식히거나 각종 설비를 유지하기 위해 외부에서 전기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마이삭 때문에 외부 전기 공급에 문제가 생긴 바람에 비상디젤발전기가 자동으로 켜진 것이다. 방인철 울산과학기술원(UNIST) 친환경에너지공학부 교수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국내 원전은 외부 도움 없이 비상디젤발전기, 이동형 발전차 등 내부 자원만으로 최대 72시간을 버틸 수 있도록 비상 전원 체계가 강화됐다”고 말했다.

다만, 원전 특성상 보다 안전한 시스템이 필요한 게 아니냐는 보수적인 시각도 제기된다. 두 번의 태풍만으로 원전 6기가 잇따라 멈춘 건 불안감을 키우기에 충분하다는 지적에서다. 환경운동연합은 논평을 내고 “기상이변이 반복되는 상황에서 원전이 안정적 에너지 공급원이 될 수 없음을 여실히 보여줬다”고 비판했다. 송전설비는 원전에서 안전등급이 아닌 비안전등급 설비로 분류된다. 고장 난다고 당장 방사선이 누출되는 대형 사고로 이어지진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자연재해에 큰 영향을 받을 수 있음이 이번 태풍으로 입증된 만큼 송전설비 관리를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 방 교수는 “확률적으로 드물게 일어나는 자연재해에까지 안전성을 더 높일 수 있는 기술을 계속 도입할 필요도 있다”고 제안했다.

임소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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