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장애인은 261만 8,000명(작년 말 기준)에 달한다. 전체 인구 100명 중 5명은 장애인으로 결코 작지 않은 숫자지만, 주변에서 그들을 찾아보기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왜 그런 걸까. 아마도 장애인들이 주로 폐쇄된 공간에서 그들끼리만 어울리고, 스스로 비장애인과 교류하는 걸 차단한 것이 원인일 수 있다. 실제로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비장애인 가운데 장애인과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비율은 17.9%에 불과하다.
그러나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교류가 활발하지 않으면, 장애 인식개선을 더디게 만들 뿐이다. 특히 장애인이 다큐멘터리 속 안타까움의 대상으로만 계속 비춰지게 되면, 왜곡된 시선이 비장애인의 머리 속에 겹겹이 쌓여 장애인들은 점점 더 위축되고 수동적 존재로 머무르게 된다.
‘이래선 안 되겠다’며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장애인들이 있다. 그들은 ‘불편하지만 불행하진 않다’며 유튜브 영상을 통해 비장애인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자신들의 일상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장애인으로 살아가며 느낀 편견과 생활 속 불편을 있는 그대로 알려주는 게 소통을 강화하고 오해를 줄일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한국일보는 세상 속으로 당당히 뛰어든 화제의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 지체장애인, 다운증후군 장애인을 차례로 만나 우리가 몰랐던 그들의 속 깊은 이야기를 들어봤다.
수화언어(수어) 통역사가 도착하기 전 청각장애인 이샛별(31) 씨를 먼저 마주했다. 입 모양을 통한 간단한 대화와 필담을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아들 예준이 얘기에 이씨는 여러 차례 함박웃음을 보였다.
이씨는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는 수어를 몰랐다. 어렸을 때부터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학교에 다녀서 입 모양을 보고 읽는 ‘독화법’에 더 익숙했던 탓이다. 그러나 독화법은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할뿐더러 알아듣기도 쉽지 않았고, 정확하게 소통하지 못하다 보니 점점 감정이 억눌렸다. 수업을 알아듣기가 어려워 고교 수업시간에는 책을 읽는게 ‘유일한 피난처’였다.
그런 이씨에게 수어는 ‘신세계’였다. 나사렛대에 입학한 후 농인이던 룸메이트와 수어로 대화를 나누며 처음으로 감정의 교류를 느끼고 매일 떠들었다. 그러던 중 교회에서 청각장애를 가진 지금의 남편을 만나 3년간 교제했다.
이씨는 2015년 공중파 방송에서 지금의 남편에게 청혼했다. 부부에겐 평생 잊지 못할 행복한 순간이었지만, 황당한 반응을 접하기도 했다. ‘들리지 않는 두 분이 결혼하면 불행할 것 같아요’, ’아이가 불쌍해요’ 등의 댓글이 달린 것이다.
이씨는 “우리 부부도 비장애인과 똑같이 싸우고 풀고 사랑한다”며 “농인을 실제로 만나면 생각이 바뀔 것으로 생각해 남편과 2011년 유튜브 채널 ‘달콤살벌 농인부부’를 개설했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올해 4월 농인 엄마의 육아 에세이 ‘너의 목소리가 보일 때까지’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책 안에는 ‘못 듣는 엄마’가 아닌 ‘더 잘 보려는 농인 엄마’의 애틋한 목소리가 담겼다.
농인(청각장애인) 부모 밑에서 자라는 청인(들을 수 있는 사람들)의 자녀는 ‘코다(CODAㆍChildren Of Deaf Adult)'라고 불린다. 이씨는 유럽과 달리 한국에는 코다에 관한 자료가 충분하지 않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코다 자녀들이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교육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한국 사회는 이제서야 눈을 뜨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실제로 국내에서 코다 모임은 2,3년 전에 처음 생겼다. “비장애인 자녀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이 잘 마련돼 있는 것처럼, 코다 자녀의 양육을 위한 가이드라인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씨는 농인 엄마가 아들을 키우면서 겪었던 여러 가지 일들을 육아 일기 형태로 기록하고 있다. 예준이는 이제 두살배기 밖에 안돼, 엄마가 쓴 책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아마 20~30년은 걸릴 것이다. “아들이 군대에 가거나 결혼할 때쯤 책을 읽게 되면 ‘엄마가 나를 키울 때 이런 감정을 가지고 있었겠구나'라고 어렴풋이 느낄 것 같아요. 잘 듣지 못해도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잖아요. 그때쯤이면 ‘우리 엄마가 참 고생 많이 했구나, 정말 애썼구나’라고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유튜브 영상에는 ‘샛별’이란 이름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유튜버’가 되겠다는 이씨의 소망이 다양한 모습으로 담겨 있다. 농인 부부가 수어로 수다를 떨고, 아이를 데리고 여행을 다니는 모습이 자주 나온다. 아들 예준이가 건강히 자라는 모습, 몸짓과 표정으로 엄마와 교감하는 과정도 담겨 있다. 걱정도 했지만 막상 방송을 시작하니 ‘아이가 너무 예쁘다. 엄마는 정말 행복하겠다’는 반응이 왔다.
이씨는 유튜브에서 불편했던 경험과 위급했던 상황도 여과 없이 보여준다. 농인 임산부로서 병원에서 겪었던 일이 대표적이다. 이씨는 새벽에 산통이 와서 통역사 없이 어머니와 병원까지 동행해야만 했다. 병원에선 필담에 의지해 의사와 소통할 수밖에 없었다. “큰 병원은 24시간 수어 통역이 되기도 하지만, 상주하는 통역사가 없어 위급한 상황에선 대처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장애인의 정보 접근성에 대해 특히 할 말이 많다.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를 즐겨봤다는 이씨는 자막이 바로 제작되지 않아 비장애인보다 1주일씩 늦게 시청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비장애인은 실시간으로 영상물을 보면서 대화가 가능하지만, 청각장애인은 그럴 때마다 소외감을 느낀다”며 “시청각 장애인을 위한 한글자막 서비스와 화면 해설서비스가 좀더 확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