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부른 '디지털교도소' 논란... 누가 그들에게 사적제재 자격 줬나

입력
2020.09.06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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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능욕 요청했다며 신상 공개, 대학생 극단적 선택
자체 검증 방식 부정확해 잘못 지목된 피해사례도
운영자도 불법 인식... 동유럽 서버라 처벌 어려워

성범죄자 등의 신상정보를 알리는 웹사이트 '디지털 교도소'에 얼굴과 이름 등이 공개된 대학생이 억울함을 호소하다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이 사이트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국가가 못한 범죄자 응징을 대신 하겠다는 그럴싸한 명분을 내세우지만, 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고 특정인을 범죄자로 몰아 사적 제재를 조장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신상 공개 과정에서 억울한 피해자가 발생하는 사례도 이어지고 있다.

6일 경찰 등에 따르면 7월 디지털 교도소 사이트 내 성범죄자 목록에 최근 숨진 대학생 A씨의 얼굴 사진ㆍ학교ㆍ전화번호 등이 올라왔다. 디지털 교도소 측은 "A씨가 누군가에게 지인능욕(지인의 얼굴에 음란사진을 합성해 인터넷상에서 공유하는 것)을 요청하다 적발됐다"면서 그의 신상정보를 사이트에 '박제'한 이유를 내세웠다. 자체 검증 결과 A씨의 범죄 행위가 명확한 것으로 판단돼 신상을 공개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A씨는 자신의 신상정보가 공개된 이후 "디지털 교도소에 올라온 사진과 전화번호, 이름은 맞지만 그 외 모든 것은 사실이 아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고, 3일 결국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A씨는 디지털 교도소가 신원과 연락처를 공개하면서, 숱한 협박 문자메시지를 받는 등 큰 고충을 겪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별다른 범죄 혐의점이 발견되지 않아 A씨가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A씨 사망 이후 A씨가 다니던 대학교 커뮤니티엔 이 사이트를 향한 비난이 쇄도하는 등 후폭풍이 거세다. A씨의 범죄 혐의가 수사기관에서 확인되지도 않았는데 A씨를 성범죄자로 단정하고 몰아세운 탓에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됐다는 것이다.

온라인 공간에서도 사이트 운영 방식을 두고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디지털 교도소에 박제된 피의자들이 실제 범죄를 저질렀는지 여부를 떠나 사적 기준으로 특정인의 신상을 공개하고, 댓글로 이들에 대한 비난을 유도하는 것 자체가 사실상 또다른 범죄 행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서혜원 변호사는 "한번 공개된 신상정보는 온라인상 파급력과 지속력이 크기 때문에 피해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사안이 중하다"고 설명했다.

올해 6월에 이 사이트가 등장한 이후 무분별한 신상정보 공개에 따른 부작용이나 사생활 침해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디지털 교도소가 부실한 검증으로 범죄와 아무런 상관없는 B씨를 '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으로 지목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디지털 교도소도 신상정보 공개가 불법이란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이들은 사이트에 "서버가 동유럽권에 위치해 대한민국의 명예훼손, 모욕죄에는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현재 경찰이 디지털 교도소 운영진의 명예훼손 혐의에 대해 수사를 진행 중이지만, 해외에 서버가 있어 수사의 어려움 때문에 실제 이들을 단죄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아무리 악성 범죄자를 응징하겠다는 취지라도 무분별한 신상정보 공개를 통한 사적 제재에는 신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B씨 사례처럼 새로운 피해자가 발생할 여지가 충분한 데다 범죄자의 신상을 까발리는 식의 분풀이는 근본적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국가가 법원에서 확정 판결을 받은 성범죄자의 신원을 알려주는 '성범죄자 신상 공개'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이 경우도 공식 사이트에서만 그 정보를 확인할 수 있고 관련 정보를 인터넷 등에 게재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는다.

물론 법원이 성범죄자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을 계속하는 것이 이런 극단적 사적 제재의 근본적 원인이라는 지적도 있다.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대표는 "성범죄 처벌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쌓인 결과 직접 사회적 재판을 해야겠다는 발상으로까지 이어진 것"이라며 "강력범죄를 엄벌하려는 사법부의 인식이 정착되지 않는 한 제2, 제3의 디지털 교도소는 계속 나올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최은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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