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층 고급스러워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전용열차 내부가 6일 공개됐다.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매체들은 이날 김 위원장이 제9호 태풍 '마이삭'으로 피해를 입은 함경도 지역 시찰 소식을 전하며 '1호열차(북한 최고지도자의 전용열차)' 내부 모습을 사진과 영상으로 공개했다. 김 위원장은 노동당 정무국 중앙위원회 확대회의를 열차 안에서 개최했는데, 태풍 피해로 마땅한 회의 장소가 현지에 없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날 인민모를 쓴 김 위원장은 진흙과 자갈이 뒤섞인 맨땅을 거침 없이 밟고 다니며 간부들에게 대책마련을 지시했다. 열차에서 열린 회의에서는 태풍 피해의 책임을 물어 도 당 위원장을 경질했고, 평양의 핵심당원 1만2,000명을 피해지역에 급파하라는 지시도 내렸다.
김 위원장의 이 같은 '애민' 행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세계적 확산과 대북제재로 북한 내 경제난이 극심한 만큼 주민들의 동요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발로 뛰는 지도자' 이미지를 부각시켜 체제 안정을 꾀하는 김 위원장 특유의 선전 전략도 엿보인다.
그러나 이날 공개된 전용열차 내부는 주민들의 피폐한 생활과 정반대로, 매우 고급스럽게 꾸며져 있었다. 실내에 전체적으로 아이보리 색감이 흐르는 가운데 천장과 내벽은 마치 당 본부청사 회의실을 연상케 할 만큼 정교한 장식이 적용돼 있다. 은은한 조명과 화려한 커튼, 창틀의 몰딩 장식 등에서도 고급스러움이 묻어났다. 방음처리가 된 듯한 출입문과 카펫이 깔린 바닥, 호피무늬로 장식된 의자와 쿠션도 눈에 띈다.
과거에 공개된 1호열차 사진과 비교해 볼 때 김 위원장의 전용열차는 최근 내부 리모델링 공사를 마친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2013년 북한 매체에 등장한 1호열차는 김 위원장의 아버지인 김정일이 쓰던 객차로, 집무실 내벽은 단조로운 흰색 마감재로, 바닥은 마루 형태로 돼 있었다. 일반 가정집에서 쓸 법한 목재 문짝을 출입문으로 쓴 것을 비롯해 커튼과 몰딩 등도 '장식'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간소하다. 2014년 첫 공개된 김 위원장의 전용열차 역시 내벽이나 천장, 조명 등이 김정일의 전용열차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후 2018년 김 위원장의 방중 당시 쑹타오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열차로 찾아 오면서 전용열차 내부가 사진으로 공개됐다. 바닥은 기존과 동일한 마루였고, 내벽과 천장, 커튼 등 인테리어는 전체적으로 간단한 흰색 톤으로 마감돼 있었다. 김 위원장 내외를 비롯한 인사들이 앉은 핑크색 쇼파가 유난히 눈에 띌 정도로 인테리어는 간단했다.
북한은 1호열차를 좀처럼 공개하지 않는다. 내부는 물론이고, 총 몇 칸이 있는지, 성능이 어떤지 등등은 모두 베일에 싸여 있다. 특히, 특정 시간과 장소에서 1호열차의 위치가 알려질 경우 최고지도자의 동선 파악이 가능하기 때문에 철저히 비밀에 부쳐진다. 건강 이상설이 불거진 김 위원장이 잠행을 이어가던 지난 4월 그의 전용열차가 강원 원산 휴양지 인근 역사에 세워져 있는 위성사진이 공개되면서 여러 내외신들이 김 위원장이 평양이 아닌 원산 부근에 머무르고 있을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한편, 김정은 위원장은 지방 시찰에 전용열차를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도로 사정이 좋지 않은 데다 경호가 용이하고, 침실과 집무실, 회의실 등 완벽한 시설을 갖춰 장시간 여행에 유리하다는 점도 전용 열차를 선호하는 이유다. 지난해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북ㆍ미 정상회담을 비롯해 중국, 러시아 방문 시에도 전용열차를 이용했다.
열차를 선호하는 이유야 어쨌든, 최고지도자의 고급스런 전용열차는 경제난에 이어 자연재해로까지 고통받는 북한 주민들의 삶과는 한참 동떨어져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