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백신 실험실의 마우스

입력
2020.09.04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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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코로나19에 대한 논문이 쏟아지더니, 요즘은 계속 백신과 치료제 개발 소식이 들린다. 코로나19가 창궐한 지 한참 지났고 지금의 확산 추이를 보면 당연하면서도 다행한 일이다. 하지만 조급한 개발이 심각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경고도 있다. 중국과 러시아에서 약물의 최종 확인 단계인 3상 임상시험을 건너뛰고 백신의 상용화 계획이 발표됐고, 미국에서는 식품의약국(FDA)의 긴급승인이 잇따르고 있다. 이에 세계보건기구(WHO)는 효능과 안전성이 충분히 확인되지 못한 상황에 우려를 표했다. 사태가 심각하기에 판단이 쉽지 않지만, 이런 가운데에서도 기초연구와 인프라 구축은 여전히 중요해 보인다.

지난달 미국 국립과학원 회보(PNAS)에 실린 논문은 인류가 대처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다양하게 제시한 기초연구의 성과였다. 연구진은 척추동물 410종을 대상으로 코로나19의 감염 위험도를 5단계로 분류했다. 코로나19는 세포막의 수용체(ACE2)를 통해 세포를 감염시킨다. 연구진은 컴퓨터에서 인간과 동물들의 수용체가 얼마나 유사한지 확인했다.

영장류가 최고 위험군에 속한 것은 예상대로였다. 하지만 돌고래나 사슴이 두 번째, 돼지나 소는 더 낮은 위험군에 속한다는 내용은 흥미로웠다. 코로나19가 바다동물이나 가축을 통해 얼마나 전염될지에 대한 시사점을 주기 때문이다. 개나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도 낮은 위험도를 보였다. 물론 연구진도 밝혔듯이 확실한 결과를 위해서는 추가 실험이 필요하다.

가장 눈길을 끈 대목은 백신과 치료제 개발을 위한 모델 동물의 후보가 나름대로 제시됐다는 점이다. 약물을 개발할 때 먼저 동물실험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실험에 적합한 모델 동물을 대량으로 확보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 이번 연구에 따르면 영장류가 가장 적합하다. 그런데 침팬지, 보노보, 고릴라 등은 현재 세계적으로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 아무리 적격이라 해도 실험에 활용하는 데 한계가 뚜렷하다.

연구진은 두 번째 위험군에 속한 햄스터를 주요 후보로 꼽았다. 실제로 햄스터는 코로나19 모델 동물로 이미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실험 동물 하면 단연 마우스 아닐까. 영장류만큼은 아니지만 유전적으로 인간과 상당히 가깝고, 무엇보다 많은 수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우스는 수용체 성분이 인간과 많이 달라 코로나19에 잘 감염되지 않는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유전자를 변형해 인간과 유사한 수용체를 갖는 마우스를 생산해 왔다. 문제는 누가 실험하든 동일한 결과가 나오도록 표준화된 마우스를 확보하는 일이다.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 연구자에게 구입비용의 부담을 덜어줄 필요도 있다. 각국이 신뢰도 높은 유전자변형 모델 동물을 무상으로 공급하는 인프라 구축에 나서고 있는 이유다.

지난달 20일 국가마우스표현형사업단을 중심으로 국내 연구진에 모델 동물을 지원한다는 발표가 나왔다. 햄스터와 함께 코로나19에 감염됐을 때 인간과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마우스를 무상으로 제공한다. 벌써 30건 이상의 신청이 접수됐다고 한다. 예정대로라면 이달 중순부터 백신과 치료제 후보물질의 효능을 확인할 수 있다. 이미 임상시험에 돌입한 후보물질들의 성공적 개발을 바라는 한편, 좀더 완전한 실험 결과를 얻는 데 도움을 주는 국내 연구 인프라의 활약을 기대한다.



김훈기 홍익대 교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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