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회 드레스 코드의 변증법

입력
2020.09.03 18: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국회입법조사처가 2일 ‘주요국 의회의 의원 복장 규정’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냈다. 한 달 전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분홍색 도트 원피스 차림으로 등원한 것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자 외국 현황을 알아보자는 취지다. 흥미로운 건 주요국 의회에서도 의원 복장 규정(dress code)을 둘러싼 논란이 적지 않았다는 점이다.

□미국 상원에선 1993년 바바라 미컬스키 의원과 캐롤 모즐리 브라운 의원이 바지정장을 입고 등원할 때까지 여성 의원의 바지 착용이 허용되지 않았다. 곧바로 여성 보좌진들이 두 의원을 뒤따랐다. 이른바 ‘1993년 바지정장 반란’이다. 민소매 금지도 도전을 받았다. 2017년 7월 CBS 기자가 민소매 원피스를 입었다는 이유로 하원 의장 로비 출입을 제지당한 사건이 계기였다. 이에 여성 의원들이 ‘민소매 입는 금요일’ 시위를 벌였고 결국 민소매 옷과 샌들 착용이 허용됐다.

□반면 종교적 상징성, 상업적 광고, 정치적 견해를 포함하는 복장은 여전히 금기 대상이다. 영국에선 2013년 캐롤라인 루카스 녹색당 의원이 ‘더 이상 3쪽은 그만’이라는 슬로건이 적힌 티셔츠를 입었다가 제지를 받고 재킷을 다시 입어야 했다. 이 슬로건은 타블로이드 신문 ‘더 선’이 3쪽에 여성모델의 가슴노출 사진을 게재해 온 편집방식에 반대하는 캠페인이다. 독일에선 2011년 좌파정당 소속 의원 5명이 철도사업에 반대하는 티셔츠를 입었다가 퇴장당하고 2일간 출석정지 명령을 받았다. 어떤 면에선 17대 국회 때 두루마기에 고무신 차림으로 나온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을 제지하지 않은 우리에 비해 한층 더 엄격한 셈이다.

□복장에서도 의회의 품위와 권위를 준수해야 한다는 생각은 동서양이 다르지 않다. 다만 서양 의회들이 시대 변화에 따른 도전을 받아들이며 새로운 기준을 세우는 모습은 배울 만하다. 류 의원의 원피스 논란에도 우리 국회의 복장 규정은 여전히 전무하다. 이대로라면 1993년 황산성 환경처 장관의 바지정장 등원 논란 때처럼 반짝 관심이 쏟아졌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잊고 지나갈 가능성이 높다. 불필요한 논란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우리도 의원 복장에 대한 '최소주의적' 규정을 마련하자는 보고서 결론에 수긍이 간다.

김영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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