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호 태풍 '마이삭'이 3일 소멸했다. 하지만 마이삭은 불과 1주일 전 한반도를 지나간 제8호 태풍 '바비'와는 비교할 수 없는 큰 상처를 한반도 곳곳에 남겼다. '역대급 강풍'에 사망자가 발생했고, 원전이 멈췄다. 집채만한 파도가 들이닥치면서 방파제는 순식간에 허물어졌고, 건물 외벽은 산산이 조각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2차 대유행과 지난달 '역대급' 집중호우로 피해 복구에 비상이 걸린 상황에서 제주도를 비롯해 마이삭이 관통한 부산 등은 수해 복구로 삼중고를 겪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와 소방청에 따르면 지난 2일 제주도를 시작으로 다음 날인 3일 오전까지 한반도에 영향을 끼친 마이삭으로 2명이 숨졌고, 4명이 다쳤다.
"바비는 택도 아이네. 마이삭에 식겁 했어예."
마이삭이 관통한 부산에선 인명피해가 잇따랐다. 이날 오전 1시28분께 부산 사하구 한 아파트에 사는 60대 여성이 베란다 창문에 테이프를 붙이다 강한 바람으로 깨진 유리 파편에 상처를 입고 사망했다. 이날 오전 6시16분쯤엔 기장군에서 마이삭으로 파손된 지붕을 고치러 올라간 70대 남성이 떨어져 목숨을 잃었다. 소방청 관계자는 "충북 옥천군에 차량이 침수돼 고립된 운전자 등 2~3일 이틀 동안 122건의 인명 구조 작업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부산에 있는 고리 3, 4호기와 신고리 1, 2호기 등 원전 4기는 갑자기 운영이 중단됐다. 중대본 관계자는 "(태풍으로 인한) 전력 계통 문제로 보인다"며 "방사선 물질누출은 없었다"고 밝혔지만, 인근 주민들은 가슴을 졸여야 했다.
시설피해는 1,600여건이 발생했다. 초속 40m를 웃도는 거센 바람에 100여개의 가로수가 뽑히고, 80여채의 집이 파손됐다. 이날 0시33분께 울산시 울주군 상북면의 한 주택 지붕에는 나무 기둥 형태의 길쭉한 구조물이 날아와 꽂히는 아찔한 사고가 발생했고,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하진부리에선 폭우로 불어난 물에 다리가 무너졌다. 경북 울릉군 울릉읍 사동리 앞바다에선 2년 전 완공한 울릉항 동방파제 200m 구간이 허물어졌다. 강풍을 이기지 못해 신호등과 간판이 떨어지는 사고도 밤새 이어졌다. 순간 최대풍속이 초속 44.7m에 이른 경북 구룡포읍에선 강풍에 인도 블록이 날아가 도로에 떨어지기도 했다. 초속 40m의 바람 세기는 바위가 날아갈 수 있는 위력이다. 워낙 파도가 거세다 보니 울릉도와 독도를 오가는 여객선(310톤ㆍ정원 390명)이 전복되는 등 선박 사고도 잇따랐다.
마이삭이 거쳐 간 한반도 동쪽은 순식간에 '암흑 천지'가 됐다. 부산과 울산(11만)을 비롯해 대구(6만), 경북(2만) 등 전국 29만여 가구가 정전으로 주민들이 불편을 겪었다. 강풍에 전신주가 쓰러져 주민들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밤새 떨어야했다. 부산 엘시티 인근에 사는 김모(44)씨는 "바람에 나뒹구는 구조물 소리가 하도 커 잠을 설쳤다"고 말했다. 최근 장마로 산사태를 겪은 주민 2,400여명은 마이삭으로 산사태 위험이 커지자 집을 떠나 임시 대피하는 소동을 치렀다.
마이삭이 한반도 인근에 머무는 동안 뱃길 80여 곳이 막히고 900여 편이 넘는 하늘길이 끊겼다. 마이삭은 제주에 1,000mm가 넘는 기록적인 비를 퍼부었고, 강원 고성에 500mm의 '물폭탄'을 터트린 뒤 이날 정오께 북한 함흥 동쪽 약 130㎞ 부근 해상에서 온대저기압으로 변질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