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날만 기다렸다”던 64세 노인에게 손 내민... 은평구 SOS돌봄서비스

입력
2020.09.04 04:30
12면


“몸은 제대로 움직일 수 없고 침대 주변은 쓰레기 천지였다. 정말 인생이 끝났구나 싶었다.”

지난달 11일 서울 은평구 갈현동의 반지하 주택에서 만난 이모(64)씨는 불과 반년 전을 이렇게 회상했다. 돌봐 줄 가족이 없는 그는 원인 모를 폐렴으로 50㎏이던 몸무게가 30㎏까지 줄었고, 가끔 먹은 즉석조리식품의 쓰레기를 치울 기력조차 없어 음식물 쓰레기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그는 “세운상가에서 전자부품을 팔았는데 가게 주인이었던 지인이 숨지면서 가게를 접었고, 자연스레 일자리를 잃게 됐다"며 "몸이 약해 따로 써주는 곳도 없어 저축했던 돈까지 써버린 뒤 자포자기 심정으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고 그간의 처지를 들려줬다.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것도 상황을 악화한 요인이었다. 그는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를 신청하려 해도 나이에서 걸려 도움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혼자서 일상생활이 어려운 노인을 대상으로 가사지원 등을 해주는 이 제도는 65세 이상 또는 65세 미만이면서 노인성 질병을 앓아야 신청할 수 있다.

그러나 이날 만난 이씨는 한결 밝은 모습이었다. 몸이 야위어 한 여름에도 긴 팔 티셔츠를 입고 있었지만 그는 “올해 초와 지금은 천지 차이”라고 말했다. 이씨가 삶의 의지를 되찾게 된 건 은평구에서 운영하는 ‘돌봄SOS 서비스’의 영향이 컸다. 지난 3월 주민 신고로 즉시 출동한 은평구 돌봄 SOS센터는 가사지원을 즉시 결정했다. 그가 오는 11월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대상자가 되기 전까지 매주 2~3회 민간 위탁업체인 젤로스돌봄센터 소속 돌봄 도우미가 찾아와 식사, 청소, 투약 등을 돕기로 한 것이다. 주민센터에서 쌀을 지원하고 은평구 내 가톨릭대성모병원에서 영약식을 제공하는 등 따듯한 손길이 이어지면서 키가 170㎝인 이씨의 몸무게도 점차 늘어 37㎏을 넘겼다. 거동도 어느 정도 가능해졌다. 이씨는 “많이 외로웠는데 이젠 돌봄 도우미가 오는 날이 기다려진다”며 “새 삶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은평구청 박현석 돌봄지원팀 계장은 “돌봄SOS센터를 통해 이젠 65세 이상 노인이나 장애인이 아니어도 돌봄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며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돌봄SOS센터에선 갑작스러운 질병이나 사고로 가사ㆍ간병이 필요하거나 거동이 불편해 식사를 스스로 챙기기 힘든 만 50세 이상 중장년, 어르신 및 장애인(연령 무관) 가구 등에 돌봄서비스를 제공한다.

지난해 7월 은평구와 강서구, 노원구, 마포구, 성동구에서 시범 운영되던 돌봄SOS센터는 지난달부터 서울 내 25개 자치구로 확대됐다. 그만큼 현장의 요구가 컸기 때문이다. 은평구만 해도 지난해 7월부터 1년 간 돌봄 도우미 파견 584건, 식사 지원 1,129건 등 총 5,016건의 돌봄 서비스가 이뤄졌다. 이 서비스는 1인 기준 연간 최대 156만원 한도에서 이용할 수 있으며, 중위소득 100%이하 가구에는 서비스 금액이 전액 지원된다.

김미경 은평구청장은 “급격한 고령화와 1인 가구 증가로 이젠 공공이 돌봄을 책임져야 하는 시대가 왔다”며 “돌봄SOS센터는 보편적 복지를 일구는 발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변태섭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