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사랑한 도시에는 이유가 있다… 소설 속 여행지 5

입력
2020.09.05 10:00

<145> 문학과 함께 빠져드는 여행지

제아무리 상상의 나래를 펼치더라도 문학작품은 현실을 근간으로 한다. 수필은 실제 생활과 끈끈하게 연결돼 있고, 시는 현실과 환상 사이를 넘나들며 리듬을 탄다. 소설 역시 현실을 반영하고 고발하며 위로한다. 그대로 멈춰버리고 싶을 만큼 아름다웠던 어느 한 순간과 영원히 묻어버리고 싶은 아린 추억과 정체 모를 눈물이 뜨겁게 흘렀던 기억이 문학작품 속에서 버무려지고 발현된다.

코로나19로 발이 묶인 현실에서 상상 여행은 어떨까. ‘문학’ 탑승자는 두 가지 방식으로 여행을 한다. 작품 속 주인공의 삶에 미래의(혹은 과거의) 여행을 오버랩한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거나 전혀 상반된 시선으로 상상의 나래를 편다. 비행기 티켓은 없지만 작가가 사랑한 다섯 도시로, 지금 출발한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 ‘녹턴’ 속 이탈리아 베네치아



베네치아는 문학 속에서도 늘 물기가 촉촉하다. 뜨거운 사랑의 전령으로 대변되고, 평생 잊을 수 없는 하나의 기억을 그려내곤 한다. 동서를 불문하고 작가들은 신물이 날 정도로 이곳에서의 사랑을 논했다. 하긴 바람결에 춤추듯 흐르는 베네치아의 물은 사랑하면서 이리저리 흔들리는 감정과 퍽 닮았다. 가즈오 이시구로는 여기에 빠질 수 없는 음악을 곁들였다. 집시 음악가 얀은 크루너(중얼거리듯이 낮은 목소리로 부드럽고 감미롭게 부르는 창법을 구사하는 가수) 토니 가드너와 함께 27년간의 결혼을 마감하며 아내에게 들려줄 마지막 세레나데에 동참한다. 곤돌라 위에서 가드너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에게 노래를 불러 주려는 거요. 농담이 아니오. 이곳은 베네치아요. 이게 이곳 스타일이지”라고. 역에 내리자마자 도저히 떠날 수 없을 것처럼 매력적인 베네치아는 그렇게 감미롭고 애잔한 가면을 쓰고 흐른다.




장 자크 루소의 소설 ‘신 엘로이즈’ 속 스위스 몽트뢰

몽트뢰는 여생을 떠올리게 하는 곳이다. 이리 조용한 곳에선 단 3일도 못 버틸 거라 투정하는 청춘의 가슴에도, 생의 마지막을 이곳에서 보내고 싶다는 소망이 스멀스멀 자라게 한다. 채플린이나 헤밍웨이, 프레디 머큐리가 이곳에 노후의 정원을 꾸민 까닭도 같은 심정에서였을까? 이들보다 몽트뢰를 유명세의 반열에 올린 장본인은 레만 호수를 에두르는 핑크빛 연정을 그린 장 자크 루소다. 그는 편지 형식을 빌린 연애 소설에서 가정교사 줄리와 제자인 생 프뢰간의 사랑을 여름처럼 열정적이고, 겨울처럼 비이성적으로 그린다. 루소는 억압적인 사회제도 때문에 이별했다가 다시 만나서 비극으로 치닫는 그들에게 스위스 자연으로의 회귀가 최상의 대안인 것처럼 이야기한다. 문명과 자연을 이분법적으로 나눈 그의 시각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몽트뢰는 그런 억지도 허용되는 낭만을 품은 게 분명하다.



엘리아스 카네티의 수필 ‘모로코의 낙타와 성자’ 속 모로코 마라케시

마라케시는 대략 말이 안 된다. 정리도 안 된다. 아니 이성을 남에게 맡기게 된다. 자동차 보닛에 기대어 눈을 붙이는 말, 귀에 딱지가 붙을 정도로 높은 데시벨의 소음, 신발 바닥에 불을 붙인 듯 올라오는 열기…. 엘리아스 카네티는 이런 상황에 당황하지 않는 성자 수준의 여행자였다. 그는 독자가 직접 마라케시의 땅을 밟는 듯 도시의 풍경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도살을 기다리는 피의 낙타, 물건과 동일해지는 시장 상인 등 도시의 내면을 추적해간다. 동시에 그는 날 선 시선의 소유자였다. 마라케시의 생동감을 대입해 어리석고 무미건조한 현실을 채찍질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가 이곳의 언어를 배우려 하지 않는 대목에선 무릎을 탁! 쳤다. “그들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이 좋기도 했다. 그들은 내게 예로부터 건드릴 수 없는 삶의 영역으로 남았다.” 그렇다. 마라케시를 여행할 분, 이성은 집에 두고 가길. 세상에 없는 맛을 누릴 테니.




파울로 코엘류의 소설 ‘승자는 혼자다’ 속 프랑스 칸

승자는 혼자다. 하지만, 자기만 아는 승리는 얼마나 애달플까. 이 책은 먼지조차 빛나는 마르티네스 호텔(Hotel Martinez)의 바를 등장시켜 칸을 이야기의 중심지로 드러낸다. 특히 칸 영화제로 화제를 추린다. 비뚤어진 이기심의 온상인 이고르를 중심으로 뭐든 등쳐먹는 하미드, 영광의 명예만을 기리는 가브리엘라 등 각자의 이익과 권력으로 범벅이 된 주인공들이 숨 가쁘게 달린다. 사랑과 돈, 권력 등 모든 명제에서 이기려고만 아등바등하는 인간의 천박한 욕심 앞에선, 평생 착한 맘 하나 믿고 살아온 이들조차 괜스레 찔리게 된다. 실상 칸은 영화제의 진통을 겪고 나면, 프랑스를 그리 탐탁지 않아 하는 영국인조차 애걸복걸하는 휴양 도시로 되돌아간다. 평화에 가까운 모든 단어를 동원해도 부족함이 없는 곳이랄까. 참 우습게도, 소설을 통해서는 별 감흥이 없었던 칸과 그리도 밀착된 감정을 나누게 될 줄은 몰랐다. 왠지 이 도시의 약점을 쥔 것 같아서.




프로스페르 메리메의 소설 ‘카르멘’ 속 스페인 세비야

사랑의 올가미로 인한 비극을 그린 소설 ‘카르멘’. 주인공 카르멘은 사랑을 시작하는 것도 끝내는 것도 쉬운, 치명적인 집시 여인이다. 소설 속의 세비야는 언뜻 별 볼 일 없는 시골인 듯 그려진다. 하지만, 새로운 사랑에 주저하지 않는 대담한 카르멘과 장렬한 투우 축제는 이 도시가 뜨거운 도가니 그 자체라며 가슴에 불을 지핀다.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세비야 대성당, 잔혹한 아름다움의 결정체인 알카사르 왕궁, 화려함의 파고가 이는 스페인 광장 등은 실제 세비야를 강렬한 깡을 지닌 도시로 느끼게 한다. 그래서일까? ‘카르멘’은 나이도 먹지 않고 비제의 오페라로 전환해 현재까지 무대가 닳도록 극에 오르는가 보다. 세비야에서는 여행 내내 진한 화장 뒤에 가려진 여인의 애절함이 서린, 플라멩코 춤의 열정적인 치맛자락이 펄럭거린다.






강미승 여행칼럼니스트 frideameetssomeo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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