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요술방망이 아냐…지금은 모두 망하는 길로 가고 있다”

입력
2020.09.02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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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란 세계자연기금 해양보전팀장 인터뷰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고 누리던 시절은 지났다. 자연과 대등한 존재가 아니라 그 안의 구성원이라는 걸 깨달아야 한다.”

최근 해양 생물 부검 활동을 펼치며 바다생태계 문제를 지적해 온 이영란 세계자연기금(WWF) 해양보전팀장은 “지금은 바다와 인간 모두가 망하는 길로 가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바다에 유실된 낚시ㆍ양식 쓰레기와 무자비한 어업으로 어획량 감소ㆍ바다생태계 파괴가 일어나고, 잡을 물고기가 없어지자 어린 생선까지 남획하면서 수산자원이 급감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폐플라스틱과 나일론 폐그물에 의해 물고기 등이 죽는 ‘유령어업’ 피해량은 연간 9만5,000톤(이용자원의 10%)에 달한다. 지난달 27일 서울 종로구 WWF 한국지부 사무실에서 만난 이 팀장은 “쓰고 버린 낚시바늘 하나까지 바다에 남아 다른 생명을 죽이고 있다”며 “해양포유류가 앓는 문제는 가까운 미래에 우리도 겪게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가 바로미터로 꼽은 돌고래는 이미 남획 등의 문제로 생존의 갈림길에 서 있다. 지난달 이 팀장과 인하대ㆍ제주대 등 연구진은 남방큰돌고래와 참돌고래, 상괭이 등 해양포유류 6마리와 바다거북이 2마리의 사체를 부검했다. 등 부위에서 큰 출혈이 발견된 참돌고래는 배에 부딪쳐서, 폐에 하얀 포말이 가득 있었던 상괭이는 질식사로 숨진 것으로 추정됐다. 이 팀장은 “포유류인 상괭이가 그물에 걸려 숨을 쉬러 물 위로 올라오지 못한 게 직접적인 사인”이라고 설명했다. 멸종위기종인 상괭이는 매년 1,000마리 이상이 불법어업과 혼획으로 사라지고 있다.

바다거북이 처한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이 팀장은 “바다거북은 조류가 낀 어구나 폐플라스틱의 겉만 보고 이 쓰레기를 먹이라 여긴다”며 “바다거북 사체를 부검하면 양식장에서 쓴 스티로폼, 폐플라스틱부터 대북선전물까지 해양쓰레기가 정말 많이 나온다”고 말했다.



“무분별한 인간 활동이 바다에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 그는 “해양 생물이 섭취한 미세플라스틱이 몸속에 축적되면 결과적으로 인간 건강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름 5㎜ 이하 입자인 미세플라스틱은 내분비계 교란 등 몸에 악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WWF가 호주 뉴캐슬대와 공동 연구해 발표한 ‘플라스틱의 인체 섭취 평가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한 사람이 일주일간 섭취하는 미세플라스틱은 약 2,000개로 집계됐다. 무게로 바꾸면 약 5g. 매주 신용카드 한 장에 쓰인 플라스틱을 먹고 있는 셈이다.

그는 어민들의 인식변화, 정부 정책보다 국민들의 ‘착한 소비’가 지속가능한 어업 환경을 가장 빠르게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팀장은 “월마트와 코스트코, 이케아, 맥도날드 등 다국적 기업마저 지속가능한 어업인증(MSC)을 받은 수산물 취급을 늘리고 있다”며 “이런 인증을 받은 수산물의 국내 유통이 확대되면 어민들은 거부감 없이 어업 방식을 바꾸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정부 정책까지 더해지면 지속가능한 바다생태계 조성이 보다 수월해질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지속가능한 바다를 위해선 어린 생선을 먹는 ‘치어 문화’도 바뀌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팀장은 “국내에선 갈치 새끼를 풀치, 어린 오징어를 총알오징어라고 이름 붙여 마치 다른 어종인 것처럼 유통한다”며 “수산자원을 무한대로 내주는 요술방망이로 바다를 바라봐선 더 이상 안 된다”고 강조했다.

변태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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