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화 + 파격 마케팅 ... 빌보드 뚫은 방탄소년단의 전략

입력
2020.09.01 18:52
2면


“방탄소년단(BTS)이 팝 슈퍼스타덤의 마지막 관문을 넘었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BTS의 빌보드 ‘핫100’ 1위 등극 소식을 전하며 이렇게 평했다. 열성 팬들의 환호를 받는 스타를 넘어 일반 대중까지 아우르는 슈퍼스타의 자리에 올랐음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수십년간 미국 대중문화의 아이콘으로 군림했던 밥 딜런이나 브루스 스프링스틴도 핫 100 1위곡은 없다.

BTS의 빌보드 핫100 1위는 ‘한국 가수 최초’라는 타이틀을 넘어 이들 노래가 미국 대중문화 깊숙이 파고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 내에서 발표되는 모든 장르의 음악 앨범을 대상으로 순위를 매기는 ‘빌보드 200’과 달리 핫 100은 특정 곡의 인기를 가늠할 수 있는 지표다. 빌보드 200이 팬덤의 규모를 보여주는 차트라면 핫 100은 대중적인 선호도를 보여준다.

핫 100 차트는 스트리밍 횟수와 음원 다운로드, CDㆍ바이닐ㆍ테이프 등 실물 매체 판매량, 라디오 방송 횟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순위를 산정한다. 비영어권 가수에게 특히 불리한 건 라디오 방송 횟수다. 2012년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센세이션에 가까운 인기를 끌었는데도 7주간 2위에만 머물렀던 것도 라디오 방송 횟수에서 당시 1위를 차지했던 마룬 5의 ‘원 모어 나이트‘에 밀렸기 때문이었다. 이 라디오 방송횟수 차트에서 ‘다이너마이트’는 BTS의 이전 최고 기록인 35위(‘작은 것들을 위한 시’)보다 15계단이 높은 20위를 기록했다.

여기에는 '다이너마이트'만의 차별화된 접근법이 주요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우선 곡 자체가 기존 K팝 스타일에서 벗어나 최근 두아 리파, 위켄드, 도자 캣 등이 선보이며 인기를 끌고 있는 디스코 팝 성향으로 만들어졌다. 거기다 가사 전체를 영어로 썼다. 라디오 방송에서 차별받을 이유가 사라진 셈이다. 대중음악평론가 김작가는 “영어 가사에다 미국 팝계에서 활동하는 작곡가를 기용한 현지화 전략이 기존의 막강한 팬덤과의 시너지 효과를 냈다"고 말했다.

여기에다 음원 발매 첫 주, 음원을 오리지널, 연주곡, EDM(일렉트로닉 댄스 뮤직) 리믹스, 어쿠스틱 등 4가지 버전으로 선보였다. 음원 가격도 통상 1.29달러의 절반 수준인 0.69달러로 낮췄다. 다양한 음원을 싸게 살 수 있게 한 것이다. 이름값 있는 가수가, 당연히 주목받는 음원을 이렇게 내놓는 것 자체가 이례적이다. ‘아미’로 불리는 BTS팬의 측면 지원도 주효했다. 이들은 음원 구매, 스트리밍을 독려하고 라디오에 '다이너마이트'를 신청했다.

그 덕에 '다이너마이트' 라디오 방송 횟수는 껑충 뛰어올랐다. 음원 판매량도 26만5,000건으로 최근 3년간 주간 판매로는 최고 기록을 세웠다. 미국 음악 저널리스트 휴 매킨타이어는 “이 정도의 음원 판매량은 요즘 보기 드문 엄청난 수준이어서 라디오의 도움이 없어도 1위를 차지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BTS의 이런 접근법은, 한국에서라면 덤핑과 팬덤에 기댔다고 비판받을 수 있다. 하지만 미국 현지 평가는 다르다. 포브스의 음악전문기자 브라이언 롤리는 “음악과 관련 없는 상품을 끼워 팔거나 실물 매체와 디지털 다운로드를 묶어 파는, 싸구려 판매 술책에 의존하지 않았다"며 “홍보ㆍ마케팅 과정에서 투명성을 보여주면서 음악에만 집중한 건 최근 핫 100 1위 경쟁에서 보기 어려운 모습”이라고 극찬했다.

BTS의 1위 등극은 미국 내에서도 의미심장한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롤리 기자는 BTS의 1위 등극을 두고 "서구권 음악 청취자들이 비(非)서구권 가수를 바라보는 방식을 바꿨다"며 이를 '패러다임 전환'에 비유했다.

관심은 BTS, 그리고 K팝의 미래다. BTS는 2018년 ‘러브 유어셀프 전 티어’부터 올 초 ‘맵 오브 더 솔: 7’까지, 네 앨범 연속 빌보드 200 1위를 기록했다. 거기에 핫 100 1위 기록까지 얹었다. 박은석 대중음악 평론가는 “이제 잘 모르거나 관심없는 사람이라 해도 BTS나 K팝을 알게 됐다"며 "BTS는 물론, K팝 그룹에겐 앞으로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 말했다.

고경석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