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우려는 현실로 돌아왔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했지만 타격은 피할 수 없게 됐다. 적지 않은 시간 동안의 법적 다툼이 정해진 수순으로 주어졌기 때문이다.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과 관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검찰의 불구속 기소 결정을 바라본 재계 안팎의 시각이다. 이에 따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에 불거진 경영상의 불확실성도 최고조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경제범죄형사부(부장검사 이복현)는 1일 이 부회장과 삼성그룹 핵심 관련자 11명을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행위 및 시세조종, 업무상배임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검찰이 검찰수사심의위원회의 불기소 권고를 뒤집은 셈이다.
검찰의 이번 결정으로 삼성에선 당장 경영 공백 사태를 걱정해야 될 처지로 내몰렸다.
이 부회장은 2017년 2월 ‘국정농단’ 관련 특검 기소에 따른 재판이 3년 반이 지나도록 최종 마무리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또다시 기소되면서 향후 3~5년간 매주 법정에 서야 한다. 대규모 시설투자자 인수합병(M&A)과 같은 그룹의 중요한 전략적 결정 과정에서 이 부회장의 운신의 폭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 부회장은 2016년 11월 이후 무려 4년 가까이 ‘사법 리스크’에 시달려 왔다. 이 부회장은 아직도 진행 중인 박근혜ㆍ최순실 국정농단 관련해 검찰 소환조사 10회, 구속영장실질심사 3회 등 진기록을 남겼다.
특검 기소 이후 재판은 무려 80차례였고 이 가운데 이 부회장이 직접 출석한 재판은 1심에서만 53차례를 포함해 총 70여 차례다. 특히 오전에 시작된 재판이 다음날 새벽에 끝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1심 재판 시간만 합쳐도 477시간50분에 이른다.
2년 가까이 이어진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 등과 관련한 검찰 수사 기간에는 압수수색 50여 차례, 임직원 소환조사 건수만 430차례가 넘는다.
이 때문에 삼성그룹 입장에선 2016년 이 부회장 주도로 성사됐던 미국 하만(Harman) 인수나 2018년 180조원 규모의 투자ㆍ고용 계획, 133조원 규모의 시스템반도체 사업 육성 방안(반도체2030) 등과 같은 굵직굵직한 결단을 기대하긴 어렵게 됐다. 재계 관계자는 “기소는 장기간의 재판으로 이어지고, 경영 현장에 있어야 할 임원들은 법정에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면서 “설령 무죄가 선고되더라도 삼성은 회복 불가능한 피해를 입게 된다”고 말했다.
기소 시점 또한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과 코로나19 재확산이 지속 중인 상황에서 총수의 경영 공백은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삼성그룹의 핵심 분야인 주요 사업 차질도 이어질 전망이다. 당장 반도체의 경우, 미국의 애플과 대만의 TSMC 등 글로벌 경쟁업체들이 코로나19 사태 속에서도 대규모 M&A 등 공격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의 사법리스크에 발목이 잡힌 삼성그룹에선 선제적 대응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미국 월스트리저널(WSJ)도 최근 보도에서 “지난 3년간 이 부회장의 법적 문제로 회사는 거의 마비 상태에 놓인 것이나 다름 없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