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과정엔 해당 분야의 실무 수련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 보통입니다. 변호사, 회계사, 변리사와 같은 자격증을 취득하려면 일정 기간의 실무 수습을 해야 합니다. 학계의 자격증인 셈인 박사 학위도 수년간 논문 훈련 과정이 필요합니다. '증'이 없는 분야도 비슷합니다. 금융이나 컨설팅 분야에는 매우 잘 구조화된 직장 내 실무 수련 과정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이들 '수련자'들은 일종의 경계인입니다. 한편으로는 배우는 학생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실제로 일에 참여하기 때문입니다. 대체로 좌충우돌이 펼쳐지지만, 가끔은 왜 배운 대로 안하느냐는 질문을 던져서 타성에 젖은 사람들을 정신 차리게 해주기도 합니다. 수련 과정은 대개 힘들고, 남자들의 군대이야기처럼, 더 과장되어 돌아다닙니다. 하지만, 의사들의 수련 과정 이야기 앞에서는 빛을 잃습니다. 전공의들이 감당하는 극단적인 노동시간과 스트레스는 다른 어떤 분야와도 감히 비교하기 어렵습니다. 이들의 가혹한 시간이 국민의 생명을 지켜내고 있다는 것은 안쓰럽고 고마운 마음입니다.
그런 그들이 가운을 벗고 병원을 떠났습니다. 정부의 의료정책에 반대해서입니다. 코로나 전쟁 시기에 이것이 옳은 일이냐는 비판적 시각이 많고 심지어 불난 집 앞에서 소방관이 파업하는 것 아니냐는 비난도 있습니다. 면허취소의 가능성을 포함한 정부의 강력한 행정조치도 뒤따랐습니다. 탐욕스러운 의사들도 모자라 젊은 것들까지 밥그릇 싸움에 동참했다며 혀를 차는 분도 계십니다. 의료계와 정부의 대립에 대한 사실과 의견은 꽤 복잡하고 저는 그걸 판단해낼 깜냥도 없습니다. 다만 저는 대전협(대한전공의협의회)의 공식성명서와 여러 전공의들이 쓴 글을 찾아보면서 조금은 안심했습니다. 그 안에 ‘수련하는 자’의 고뇌가 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전문가를 향한 수련 과정은 인간을 성숙하게 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자기가 뭐라도 된 양 으쓱거리던 이들도 수련 과정을 통해 자신이 앞으로 감당해야 할 일이 얼마나 중요하고 어려운 일인지 느끼면, 겸손해지게 됩니다. 한계를 느끼는 순간이 연일 반복되면 이 악물고 뭔가 더 열심히 배우겠다는 열망도 생깁니다. 갈등 상황을 맞닥뜨리면서 직업 윤리도 체득해 나갑니다. 전공의들의 글에서 저는 이런 모습을 생생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환자를 더 잘, 제대로 돌보고 싶다는 뜨거운 열망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 옆을 떠나게 되는 모순된 상황에 대한 갈등이 드러나고 있었습니다. 시위하러 나가서도 중환자실과 응급실에 있는 환자들의 바이탈을 체크하게 되더라는 이야기는 인상적이었습니다. 수련하는 자인 자신들을 노동의 중축으로 삼고 있는 왜곡된 의료 환경과 정부의 정책적 잘못에 대한 분노도 아주 컸습니다. 젊은이다운 뜨거운 감정이 때로 좀 과잉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일부의 비판처럼 젊은 나이에 벌써 밥그릇을 챙기기 위해 떨쳐 일어났다고는 보기 어렵습니다.
여론은 대체로 의료계에 비판적입니다. 그러나 한 사회를 지탱하는 전문가집단이, 더욱이 코로나 의병이라고까지 불릴 만큼 헌신적이었던 이들이 이처럼 극단적인 선택까지 나아가고 있다면, 그들의 이야기를 조금 더 깊숙이 듣고 판단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특히 아직 이해관계에 덜 얽매여 있고 직업적 자부심과 선한 의도를 조금 더 가지고 있을 법한 수련하는 자들의 목소리라면 더더욱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