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불붙는 美 인종차별 반대시위… 트럼프ㆍ바이든 누구도 안심 못한다

입력
2020.08.30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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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VS 폭력' 양상 따라 대선 변수로
두 차례 총격 사망... 트럼프 반사이익
바이든, 중산층 반감 해법 찾기 골몰
트럼프,  폭력성 더욱 부각 지지 넓혀

미국 내 인종차별 반대시위 열기가 다시 달아오르고 있다. 위스콘신주(州) 커노샤에서 비무장 흑인 제이컵 블레이크가 세 아들이 보는 앞에서 경찰 총격을 당한 사건이 새 도화선이 됐다. 한 동안 소강상태를 보였던 인종차별 의제가 재부상하면서 2개월 앞으로 다가온 대선에도 핵심 변수로 떠오를 전망이다. 시위 진행 양상에 따라 트럼프ㆍ바이든 모두에 악재가 될 가능성이 있어 누구도 안심하지 못하는 형국이다.

29일(현지시간) 일간 뉴욕타임스 등에 따르면 이날 커노샤 도심에 1,000여명이 반(反)인종차별 목소리를 내기 위해 모여 들었다. 이 자리에는 전날 대규모 워싱턴 집회에 참석했던 블레이크 가족도 참석했다. 아들의 사진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은 블레이크의 아버지는 “아들의 목숨을 뺏을 수 있다고 생각할 권리를 왜 그들에게 줬느냐”고 외치며 변화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23일 총격 사건 직후 벌어진 방화 등 폭력 사태를 의식한 듯 평화 시위의 중요성도 언급했다.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워싱턴 행진 연설 57주년을 맞아 열린 전날 워싱턴 집회 열기도 뜨거웠다. 수천명이 모인 집회에는 킹 목사의 장남이 연단에 서 구조적 인종차별을 규탄하던 킹 목사의 뜻을 이었고, 인종차별 반대 시위를 촉발한 고 조지 플로이드의 가족도 모습을 드러냈다. 플로이드는 앞서 5월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백인 경찰관의 무릎에 목이 짓눌려 숨져 미 전역에 공분을 일으켰다.

시위는 거세졌지만, 길어지기도 하면서 대선에 미칠 영향은 복잡다단해졌다. 일부 유권자들 사이에서 폭력 시위에 거리를 두는 인식이 꿈틀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마냥 불리하지만은 않은 상황으로 바뀌었다는 얘기다. 미 CNN방송은 “시위가 (유권자에게) 어떻게 비춰지느냐에 따라 두 대선 주자 모두 낙마 가능성이 있다”며 “평화 시위가 이어지면 민주당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폭력 양상이 두드러지면 트럼프 대통령이 이득을 볼 것”이라고 내다봤다.

블레이크 사건 이후 재점화된 시위 과정에서 두 차례 발생한 총격 사건은 이런 진단에 힘을 싣고 있다. 이날 오리건주 포틀랜드 시내에선 트럼프 지지자들과 시위대가 충돌해 1명이 총에 맞아 숨졌다. 앞서 25일에는 10대 백인 소년이 커노샤 반인종차별 집회 참석자들을 향해 총을 쏴 2명이 사망했다.

최근 바이든과 트럼프의 격차가 크게 줄면서 판세 예측은 더 어려워졌다는 평가다. 두 달전 두 자릿수였던 두 후보의 지지율 격차는 최근 오차범위 내까지 좁혀졌다. CNN의 이달 전국단위 지지도를 보면 바이든(50%)과 트럼프(46%) 격차는 4%포인트밖에 안된다. 인종차별 문제 대한 유권자들의 관심이 줄고 시위를 바라보는 관점도 변한 이유가 크다. NPRㆍPBS 공동 여론조사에서도 시위를 ‘합법적’이라고 보는 미국민 비율이 6월 62%에서 이달 53%로 떨어졌다.

바이든 측은 적절한 시위 활용 방안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정치전문매체 더힐은 “민주당과 바이든은 백인 중산층이나 무소속 유권자들에게 반발을 사지 않으려 치안의 중요성을 언급하면서도 차별 반대 메시지를 확실히 보내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전했다. 반면 일방 공세만 펼치면 되는 트럼프는 더욱 더 시위의 폭력성을 강조하는 데 열을 올리는 모양새다. 미 언론은 그가 내달 1일 사건 발생지인 커노샤을 직접 찾기로 한 것도 "시위대를 위로하기보다 피해 상황을 부각하는 데 집중하기 위해서"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진달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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