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통합당의 '창조적 파괴'를 내걸고 출범한 '김종인 비상대책위'가 이번주(9월 3일) 100일을 맞는다. 노련한 노정객이 휘두른 메스로 4ㆍ15 총선 이후 궤멸 위기에 처했던 통합당은 회생 수순을 밟고 있다. 김 위원장이 이달 19일 광주 5ㆍ18 민주묘지를 찾아 무릎 꿇고 사과한 장면에 '창조적 파괴'의 힘이 압축돼 있다.
김종인 체제는 그러나 여전히 불안하다. 김 위원장의 성공 여부는 내년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달려 있지만, '참신한 인물'을 찾아냈는지, 아닌지조차 베일에 싸여 있다. '외부인' 출신인 김 위원장은 통합당에 단단하게 착근하지 못했다. 그가 삐끗하는 순간 흔드는 세력이 등장할 것이다.
통합당은 31일 비상대책위에서 새 당명을 '국민의힘'으로 정하고, 다음달 1, 2일 개정 작업을 마무리한다. 지난 6월 1일 김 위원장이 첫 당무를 시작한 이후 통합당의 과거와 선을 긋는 체질 개선 작업이 일단 마무리되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실용을 중시한다. 그의 행동도, 의사결정도 신속했다. 지난 10일 통합당 지도부는 전남 구례 수해 현장으로 향했다. 예정에 없던 일정이었다. "가 봐야겠다"는 김 위원장의 당일 아침 한 마디가 통합당 지도부를 움직였다. 하루 늦게 수해 현장을 찾은 여당에서는 '늦었다'는 탄식이 나왔다.
8ㆍ15 서울 광화문 집회를 앞두고 통합당에선 "참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통합당이 '아스팔트 우파'와의 결별을 주저할 때였다. 김 위원장은 "당 차원의 참여는 없다"고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김 위원장의 결단으로 통합당은 광화문 집회발 코로나 재확산 책임론을 피했다. 극우 보수와 한 몸이라는 비판에서도 풀려났다.
김 위원장이 연출한 이 같은 장면들 덕에 통합당 지지율이 상승세를 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으로 상승세가 주춤하긴 하지만, 통합당의 추락을 김 위원장이 저지한 건 분명한 사실이다.
김종인 체제의 남은 과제는 쇄신 작업에 대한 당내 반발을 돌파하는 것이다. 김 위원장의 중도실용 노선에 이질감을 느끼는 '보수 성향' 인사들이 적지 않다. '당이 사는 게 우선'이라며 지금은 숨 죽이고 있지만, 김 위원장이 실수하는 순간 흔들기가 시작될 수 있다.
김 위원장에 반대하는 장제원 통합당 의원은 29일, 30일 잇달아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며 "비대위의 전횡이 도를 넘고 있다. 비대위가 제안한 정강정책 개정안은 명쾌함과 현실성이 떨어지는 졸작"이라고 김 위원장을 저격했다.
내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2022년 대선의 전초전과 다름 없다. 통합당이 오래도록 인난을 겪은 탓에, 마땅한 '선수'가 눈에 띄지 않는다. 통합당 한 관계자는 "'백종원 같은 인물은 대선주자로 어떻느냐'는 발언으로 기대감을 한껏 높인 김 위원장이 어떤 인물을 내세울지가 초미의 관심사"라고 말했다.
지난 100일은 김 위원장 '개인기'에 의존해 통합당이 회생한 기간이었다. 보수의 '창조적 파괴'를 통합당에 이식하는 난제가 남았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최근 통합당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는 건 사실이지만, 당 자체의 체질 변화라기보다는 '김종인 원맨 플레이'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 위원장이 인적 쇄신을 단행하고, 서울시장 선거에 완전히 새로운 인물을 등용하기 위한 마중물을 자처해야 후한 성적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