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이상설에 휩싸였던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8일 총리 관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사임 의사를 공식 표명했다. 차기 총리가 정해질 때까지는 총리 임무를 수행할 전망이다. 2007년 9월 1차 집권기 사임의 원인이었던 지병 궤양성 대장염이 이번에도 발목을 잡았다. 아베 총리는 2012년 12월 이후 7년8개월간 재임하며 역대 최장수 총리 기록을 새로 썼으나 결국 건강 문제의 벽을 넘지 못했다.
주목되는 건 한일 관계에 미칠 영향이다. 양국 간에는 2018년 10월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을 시작으로 일본의 수출규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 결정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첩첩이 쌓여 있다. 현재로선 후임이 누가 되든 한일 관계에 당장의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갈등 해결의 물꼬를 트기 위해선 일본 정부가 경제보복 조치를 철회해야 하지만 강제징용 배상에 대한 인식 차가 워낙 크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일본 내부의 태도 변화를 예의 주시할 필요는 있다. 국교 수립 이래 최악이라는 한일 관계를 여기까지 몰고 온 데는 아베 총리의 책임이 컸다. 집단자위권 법제화와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 일본의 우경화를 이끌었던 아베 총리는 한일 관계도 국내 정치에 이용해 온 측면이 적지 않다. 관계 개선의 최대 걸림돌이 해소되는 만큼 새 지도부가 대화를 모색하는 쪽으로 국면이 바뀔 수도 있다.
차제에 일본 정부가 과거사에 대한 직시와 반성 없이는 양국의 협력 관계도 열릴 수 없다는 인식의 전환을 보여주면 좋겠지만, 우리 정부도 유연한 대응을 할 필요가 있다. 극일이라는 명분도 중요하지만 한미일 삼각동맹의 복원이라는 실리도 필요하다. 마침 문재인 대통령이 광복절 기념사에서 “우리는 언제든 일본 정부와 마주 앉을 준비가 돼 있다”며 대화의 문을 열어놓았다. 일본의 리더십 교체가 한일 관계 복원의 계기가 될 수 있도록 양국 정부가 외교적 상상력과 지혜를 발휘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