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비껴간 ‘동화 같은 세상’

입력
2020.08.31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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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 부산은 평지가 많지 않다. 어릴 적 지척에 있는 학교에 가려고 해도 미로처럼 연결된 마을 골목길을 굽이굽이 돌아 한참을 걸어가야 했다.

등하교 고생길로 기억되던 그 길이 지금은 관광명소로 탈바꿈해 카메라를 들고 찾아오는 관광객들이 가득 채우고 있다. 산 중턱을 가로지르는 산복도로 위아래 산비탈에는 6·25전쟁 중 전국의 피난민들이 몰려들어 천막집을 짓기 시작하면서 달동네가 생겨났다. 산업화 물결 속에 일자리를 찾아온 이주민들이 정착하면서 자연스럽게 산비탈에 옹기종기 모여 살게 되면서 지금의 모습을 이루게 된 것이다.

하지만 부산도 부동산개발의 물결을 거스르기가 힘들다. 부산의 대표적인 풍경으로 남아있던 달동네들도 하나둘 재개발이 시작되어 옛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 얼마 남지 않은 부산 옛 도심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 천마산이다. 해발 고도는 326m로 낮지만 감천문화마을과 남부민동, 영도 등을 조망할 수 있다. 산 정상 전망대에 올라 남부민동의 아기자기한 집들의 모습을 담았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불이 켜지기 시작하자 어릴 적 느꼈던 친근한 골목길 풍경들이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더운 여름 힘들게 올라온 산꼭대기에서 시원한 바람과 함께 어릴 적 동심을 느끼게 해준 고마운 풍경에 위로를 받았다.



왕태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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