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친구들'에서 완벽주의자 정재훈이 듣던 음악의 정체

입력
2020.09.0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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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기엽 음악감독의 비발디 풍 클래식

편집자주

일상생활에서 흔히 접하지만 막상 무슨 노래인지 잘 떠오르지 않는 음악, 그 음악을 알려드립니다.


고급스러운 집에 거실 소파에 앉아 깊은 생각에 잠긴 채 양주를 마시고 있는 정재훈(배수빈 분). 심각한 표정만큼이나 긴장감이 끌어올리는 클래식 음악이 배경으로 깔린다. 현악기 선율이 빠르게 흘러나오자 그보다 훨씬 더 날카로운 바이올린 주선율이 귓가에 박힌다. 반주로 나오는 하프시코드(쳄발로)의 챙챙거리는 화음은 고전미를 더한다. 정재훈은 자신이 짝사랑했던 여주인공 남정해(송윤아)를 몰래 찍은 사진을 바라보는데, 음악이 음악이다보니 뭔가 아련한 추억에 젖거나 옛 일을 반성하기보다는, 무슨 일을 꾸밀 것만 같다.

종영을 앞둔 JTBC 드라마 '우아한 친구들'의 첫 화의 한 장면이다. 드라마는 갑작스러운 친구의 죽음을 계기로 격랑에 휩싸이는 20년지기 친구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극에서 정재훈은 비뇨기과 원장 의사인, 차가운 완벽주의자로 묘사된다. 첫 회에 등장한 음악은 그래서 정재훈이란 캐릭터를 설명해주는, 일종의 테마곡이다. 주인공에 대한 테마곡인데다 음악 자체가 워낙 강렬해서일까. 드라마를 본 이들 중에는 이 곡의 정체를 궁금해 하는 시청자들이 많았다.

실제 방송 뒤 포털 사이트 등을 보면 '배수빈씨가 듣는 클래식 작품의 제목을 알려달라'는 게시글이 제법 된다. 네티즌들도 나름의 추측성 답변을 달아두긴 했다. 가장 많은 추측 중 하나는 '헨델의 오라토리오 같다'는 것이었지만, 정답은 아니다.

엄기엽 음악감독이 직접 만든 순수 창작곡이어서다. 엄 감독은 "드라마 상에서 주인공들이 살인 용의자로 의심받기 때문에 주제곡에는 핵심 복선을 까는 역할을 맡기고 싶었다"며 "극의 전개에 맞춰 처음부터 새로 만들자고 작정한 곡"이라 말했다. 아직 이 노래에 붙은 제목도 없다.

헨델의 곡이란 추측이 나온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프시코드라는 고전적 악기를 쓴데다, 곡의 구성에도 바로크적인 색채가 강하게 배어 있다. 엄 감독 스스로도 "바로크 시대에 유행한 완벽주의 음악이 정재훈이라는 캐릭터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며 작업 초기부터 "비발디 풍의 실내악 느낌의 곡을 생각했다"고 말했다. 숨겨진 비극을 암시하기 때문이까. 곡의 조성은 D단조다. 녹음에는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연주자 14명이 참여했다.



드라마가 시작되자 이 음악에 대한 반응이 기대 이상이다. 엄 감독은 이 노래는 3악장까지 작곡해볼 계획이다. 엄 감독은 드라마 음악감독으로 유명하지만, 피아니스트 출신이기도 해서 클래식에 대한 이해가 높다. 엄 감독은 "3악장까지 모두 완성되면 조만간 음반 등 형태로 공식 발표해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장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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