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수는 연장이 많을수록 좋은 법... '최면'도 그중 하나죠

입력
2020.08.31 11:00
[인터뷰] 박주호 전북경찰청 프로파일러

"최면은 과학적으로 증명된 효과적인 수사기법 중 하나에요. 마치 거짓말탐지기처럼요."

전북 전주시 5세 여아 실종 사건 수사에 프로파일러로 투입된 박주호(48) 전북경찰청 형사과 과학수사계 경위는 해군본부 수사관 출신으로, 수사 경력만 20년이 넘는 잔뼈 굵은 베테랑이다. 경찰 범죄심리분석관 특채 2기로, 12년간 수많은 전국 단위 사건에 투입됐던 그는 국내 유일의 법(法)최면 전문수사관이다.

6일 오후 전북경찰청 근처 한 카페에서 만난 박 경위는 "경찰 수사에 '만능 열쇠'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목수가 못을 박을 때는 망치, 판자를 자를 때는 톱을 꺼내 듯 프로파일러도 개별 상황에 적절한 기법을 그때그때 꺼내 써야 한다"고 말했다. 최면수사도 프로파일러의 연장통 속 수많은 도구 중 하나라는 뜻이다.

실제로 경찰 프로파일러 중 법최면을 실제 현장에서 사용하는 건 박 경위가 거의 유일하다시피하다. 일선 경찰관들조차 "양파를 먹으며 사과 맛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 최면수사의 전부인 줄 아는 경우 태반이기 때문이다. 박 경위는 "심리적 외상이나 정신적 충격으로 사건 당시 기억을 못하는 경우, 시간이 많이 지나 사건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진 경우에 최면을 통해 대뇌 어딘가에 남아있는 기억을 끄집어 낼 수 있다"고 했다.

법최면은 뇌파를 베타파(β)에서 세타파(Θ)로 유도해 수행하는 엄연한 과학이다. 베타파는 깨어 있을 때 나타나는 파동을, 세타파는 졸리거나 명상에 잠겼을 때 나타나는 파동을 뜻한다. 최면 상태에서는 세타파가 주로 확인되는데, 이때 신체적, 정신적 긴장은 이완되고 특정사건에 대한 기억력이 급격히 증가한다. 박 경위는 “사건과 관련 없는 기억의 수도꼭지는 잠그고, 수사에 도움이 되는 정보만 흘러나오도록 집중하게 하는 게 핵심”이라고 말했다.

최면 대상자인 목격자 혹은 피해자가 최면에 의구심을 갖는 경우도 많은데, 이들을 설득하는 것도 박 경위의 몫이다. 박 경위는 "어떤 분은 '내 기억이 틀렸을 리 없다'며 한사코 최면을 거부했는데, 이런 경우 방어 기제가 높고 최면감수성이 낮다"면서 "최면 전 충분히 대화를 나눠 친밀감을 형성하고, 암흑 속 편안한 분위기에서 사건 당일 오감을 깨우는 게 포인트"라고 귀띔했다.

다만 박 경위는 법최면에 대한 맹신은 금물이라고 최면수사 만능론을 경계했다. 박 경위는 "최면수사에서 나온 증언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다"며 "사건 해결의 실마리로 생각하고 이후 검증 과정이나 보강 수사를 해야하는 게 당연한 절차"라고 강조했다.

박 경위가 일반적인 프로파일러와 달리 일선경찰서 강력계에서 형사로 근무하는 등 현장을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피의자를 직접 체포하고, 시체를 직접 부검해 봐야 프로파일러로서 적재적소에 다양한 수사기법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박 경위는 "프로파일러의 판단이 언제나 옳은 수는 없다"면서도 "가제트 형사처럼 모자 속에 온갖 장치들을 갖고 다니면서 필요할 때 꺼내 쓰는 만능 수사관이 되는 게 저의 목표"라고 전했다.

전주= 이승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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