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가 성별 고정관념과 편견에서 벗어나 ‘나다움’을 배우도록 하겠다는 취지로 추진된 ‘나다움 어린이책’ 사업이 주관부서인 여성가족부의 눈치보기에 흔들리고 있다.
여가부는 26일 오후 “일부 도서의 문화적 수용성 관련 논란이 일고 있음을 감안해 해당 기업과 협의해 도서(7종)를 회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여가부는 ‘책 자체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그동안 반박 입장없이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이에 대해 한국여성단체연합은 27일 성명을 내고 “여가부는 인권과 다양성, 성평등과 존중의 가치를 부정하는 발언을 한 국회의원과 일부 혐오세력의 주장에 대해 제대로 된 반박도 하지 않은 채, ‘문화적 수용성’이라는 말도 안되는 이유를 붙여 실질적인 정책 철회를 선언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성평등과 다양한 가족 정책 추진이라는 본연의 역할을 망각하고 일부 혐오세력의 부당한 요구에 굴복한 여가부를 강력하게 규탄한다”며 “여가부의 존재 이유를 망각한 정책 결정은 어떠한 이유로도 면죄부를 받을 수 없다”고 밝혔다.
나다움 어린이책 사무국 관계자는 “선정 도서들은 40년 전부터 많은 상을 받아온 작품들이지만 2010년 이후에야 국내에 한 두 권씩 도입됐다”며 “학교 교재도 아니고 추천도서로 교사가 관리하는 책들의 몇몇 페이지만 가지고 전체를 호도하는 것이 문제의 발단”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이 관계자는 “종교 단체 등 민간에서는 제기할 수 있는 문제지만 이것이 국회에서 공론화되면서 책 회수 결정으로 이어진 것”이라며 “지난해 교육부의 성교육 표준안 개편 작업 중단 등 성교육이 갈수록 후퇴하고 있는 국내에서 제대로 된 성교육이 이뤄져야 한다는 요구는 많은 벽에 부딪혀 왔는데, 이번에 또다시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나다움 어린이책 사업 주관 중 하나로 예산의 집행을 담당한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은 27일 여가부에 사업 불참을 공식 통보했다. 어린이재단 관계자는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NGO 입장에서 최근 논란은 사업을 지속하기에 조심스럽다”고 밝혔다.
여가부는 나다움 어린이책 사업의 지속을 위한 현실적인 판단이었다는 입장이다. 여가부 관계자는 “문제 제기하는 쪽은 단편적인 부분으로 트집을 잡고 있지만, 나다움 어린이책 사업은 학교 배포뿐 아니라 공모전과 창작지원, 지자체와의 프로그램 기획 등 사업 확장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라 사업 전체가 왜곡돼서는 안된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나다움 어린이책 논란은 이달 중순 보수 기독교 학부모 단체가 선정 도서 일부에 대해 ‘성기와 성교가 그대로 드러나는 등 선정적이고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문제제기하며 시작됐다. 여기에 25일 국회 교육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병욱 미래통합당 의원이 5개 초등학교에 배포된 나다움 어린이책 일부 내용을 문제삼자 논란은 더 커졌고, 하루만에 여가부는 문제가 제기된 도서 7종의 회수를 결정했다.
이번에 회수되는 책 7종은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덴마크) △아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놀랍고도 진실한 이야기(호주) △걸스토크(한국) △엄마는 토끼 아빠는 펭귄 나는 토펭이(프랑스) △여자 남자, 할 일이 따로 정해져 있을까요(일본) △자꾸 마음이 끌린다면(스웨덴) △우리가족(엄마ㆍ아빠ㆍ딸ㆍ아들) 인권선언(프랑스)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