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반대하고 있는 의료계가 26일부터 집단휴진(파업)을 강행하고 있는데요. 정부는 의사들을 향해 업무개시 명령이라는 '최후의 카드'를 꺼냈고 의료계도 '무기한 총파업'으로 맞서면서 갈등이 격화하고 있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확산 속에서 벌어지면서 시민들의 불편과 걱정도 더욱 커지고 있는 상황인데요.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주도하는 의사 집단휴진이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2000년, 2014년에 이은 세 번째인데요, 앞서 두 차례 집단휴진 은 왜 일어났는지 상황은 어땠는지 되짚어 보겠습니다.
의약분업은 진료와 처방은 의사가, 의약품 조제는 약사가 담당하게 하는 제도인데요. 당시 김대중 정부는 의약품 오남용을 막기 위해 의약분업 도입을 내세웠습니다. 하지만 의사들은 "약사들에게 의약품 조제를 맡길 수 없다"며 반대했는데요. 의료계는 1999년 11월 30일 2만명이 참석한 가운데 1차 집회를 열었고, 이듬해인 2000년 2월 2차 전국 집회에도 4만명이 모였습니다.
2000년 4월에는 4~6일 3일 동안 전국 개원의가 중심이 된 1차 파업이 시작됐고요, 이어 6월 20~25일 6일 동안 개원의, 병원 보직의, 대형병원에서 인턴이나 레지던트로 일하며 공부하는 전공의 등 3만5,000여명이 2차 파업에 들어갔습니다.
의사들이 파업에 들어가자 의료대란이 현실화하면서 시민들의 지지를 얻지는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뉴스를 보면 시민들이 진료와 수술이 미뤄지면서 분통을 터뜨린 사례들이 많이 나와 있고요. 시민사회단체들도 "의사들의 집단폐업은 국민의 건강을 볼모로 자신의 요구사항을 관철시키려는 집단 이기주의"라고 규정했을 정도입니다.
이후 8월 11~17일 일주일 동안 전국 의료기관이 폐업 투쟁을 벌였고, 9월15~17일 3일동안 의대 교수까지 외래 진료에서 철수하는 4차 파업, 10월 6~10일 5일 동안은 5차 파업이 이어지면서 거의 1년 내내 투쟁이 이어졌습니다.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10월 4일에는 의대생 대부분이 자퇴서를 제출해 파장을 일으켰고, 의대 본과 4학년 3,081명 중 62명을 제외한 3,019명이 의사 국가고시를 거부했습니다. 이에 대해 약대생들은 '의료계 폐업철회 투쟁'으로 맞섰지요.
의약분업은 한달의 유예 기간을 거쳐 2000년 8월에 전면 시행됐지만 그 이후에도 의사들은 파업 등 단체 행동을 이어간 겁니다.
의사들의 대규모 파업은 큰 후유증을 남겼습니다. 김재정 당시 대한의사협회장을 비롯해 한광수 서울시의사회장 등이 잇달아 구속됐는데요. 파업 이듬해인 8월 김 전 회장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고, 한 전 회장 등 간부들도 징역 8~19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습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의사들에게 휴업을 사실상 강요하고 전공의 파업에도 개입해 병원 업무를 마비시켰다"며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을 받고도 이를 따르지 않았다는 공소사실은 모두 유죄로 인정된다"고 판단했지요. 김 전 회장은 의사 면허취소까지 당했지만 2009년 면허를 다시 취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의약분업 파동은 2000년 12월 초 '약사법' 개정안에 의료계, 약사회, 정부가 합의함으로써 막을 내리게 됐습니다. 그 과정 속에서 환자들은 큰 불편을 겪어야 했고, 의사와 약사 등 사회에서 '선생님'이라는 존칭과 함께 존경 받던 이들이 보여준 집단 이기주의에 국민의 따가운 비판이 이어졌다고 전합니다.
그로부터 14년 뒤인 2014년 3월 10일 의사들은 또 한번 청진기를 내려놓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원격의료 도입과 영리병원 추진을 막아내기 위한 것이었는데요. 당시 노환규 대한의사협회장이 전국의사총파업을 주도했지요. 63곳 병원의 전공의 7,200여명이 참여했습니다. 그러나 의약분업만큼 명백한 반대 이유가 없었던 데다 의료계 내부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면서 파업의 규모는 크지는 않았습니다.
정부는 원격의료를 통해 도서·산간지역 주민들의 의료서비스 접근성을 높일 수 있다는 입장이었습니다. 반면 의료계는 원격의료 도입으로 문을 닫는 동네 병·의원들이 속출할 것을 우려했는데요.
원격의료에 대해 정부가 한 발 물러서면서 파업은 봉합됐습니다. 원격진료 도입의 경우, 의협의 주장대로 국회 관련법 처리에 앞서 시범사업을 시행해 문제점을 파악하기로 합의한 겁니다. 의료정책연구소가 올해 1월 내놓은 '세계적으로 일상화된 의사 단체행동' 보고서를 보면 당시 정부와 의사협회는 원격의료와 투자활성화, 건강보험제도, 의료제도, 의료현장 불합리 규제 등 4개 분야에 대해 상호 의견을 보완하고, 전공의들의 수련환경 개선에 대한 요구 사항을 추가 논의해 개선 방안을 마련하기로 합의했습니다.
그렇지만 시민단체들은 정부와 의협이 밀실협의를 했다고 비판했는데요. 참여연대와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은 정부와 의협이 원격의료∙영리자회사와 수가 인상을 위한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 개편을 맞바꿨다고 비판했습니다.
매년 의사와 약사들은 협회를 통해 정부·건강보험공단과 자신들이 제공하는 의료서비스에 대한 대가, 이른바 수가를 얼마나 올릴지 협상하고 이견이 커 협상이 결렬되면 공적기구인 건정심이 표결로 조정 폭을 확정하는 구조인데 건정심 위원 중 정부 추천 몫을 의료 공급자가 같은 수로 추천하도록 한 겁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소비자를 위한시민모임 등으로 이뤄진 건강보험가입자포럼도 건정심 구조를 의료공급자에게 유리하게 바꾸기로 한 결정을 집중 비판하기도 했지요.
당시 의료계는 가장 화두였던 원격의료를 막아내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파업 투쟁 과정에서 의협 내부 갈등이라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의협회장 불신임 사태까지 벌어졌는데요. 노환규 전 의협 회장은 의협이 설립된 지 106년 만에 처음으로 불신임안이 통과돼 회장직에서 물러났습니다. 시ㆍ도의사회장단과 상의 없이 집단휴업을 했고 이후 진행된 의정(醫政)협의 과정에서도 시ㆍ도의사회장단과 상의 없이 집단휴업과 의정협의를 결정했다는 이유였습니다.
이에 더해 노 전 의협 회장과 의협 집행부는 회원들에게 집단휴진을 동참할 것을 요구한 혐의로 법정 공방에 들어가게 됐는데요. 이들은 6년이 지난 올해 3월 열린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습니다.
의사들은 지금 또 다시 파업에 돌입했습니다. 특히 의료진들은 의대 정원 확대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단순히 의사 수를 늘리거나 공공의대를 설립하는 것만으로는 지역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27일 "(의료계 총파업은) 사상 최대 화재가 발생했는데 소방관들이 화재 앞에서 파업하는 것이나 진배 없다고 생각한다"며 "(의료계 파업에) 원칙적 법 집행을 통해 강력히 대처하라"고 지시했는데요. 그러면서도 정부는 의료진의 현장 복귀를 호소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양측의 입장차가 큰 만큼 해결이 쉽지만은 않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