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부터 튀김을 좋아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아주 어렸을 때부터 명절 때마다 시골의 할아버지 댁에서 옆에서 지키고 있다가 고구마튀김을 낼름낼름 받아먹거나 시장에서 어머니가 사 왔던 튀김옷이 두꺼운 야채튀김을 좋아했었다.
그러고 보니, 이런 기억도 있다. 아직 양념치킨 체인점이 있기 전 시장에선 노릇노릇한 닭튀김을 팔았다. 가끔, 별식이 당길 때마다 우리 식구는 그 집에서 닭튀김을 사서 먹었다. 그때도 나는 팍팍한 닭고기보다는 바삭바삭한 튀김옷을 좋아했다. 생각만 하면, 지금도 군침이 돈다.
어쩌면 나의 이런 튀김 사랑은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새겨진 오랜 본성이다. 알다시피, 지방은 다른 영양분과 비교했을 때 에너지 효율이 뛰어나다. 적은 양으로 더 많은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지방은 몸속에서 장기간 안정적인 저장도 가능하다. 먹을거리가 귀한 인류로서는 기회만 닿는다면 기름진 음식을 포식하려고 했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내가 기름진 음식의 정점에 있는 튀김을 사랑한 일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나뿐만이 아니다. 주위를 둘러봐도 건강이나 체중 관리 등 여러 이유로 눈물을 머금고 튀김을 멀리하는 사람은 봤어도, 그것을 싫어하는 ‘이상한’ 사람은 보지 못했다. 오죽하면, ‘신발도 튀기면 먹는다’는 이야기가 요리사의 입에서 나왔겠는가.
이렇게 튀김을 좋아하면서도, 정작 튀김 자체에는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 그러다 임두원의 ‘튀김의 발견’을 무심히 손에 들었다가 한 대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역사, 문화, 과학을 넘나들면서 튀김에 얽힌 온갖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소개하는 이 책은 튀김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러니까 전 국민이 읽어야 할 필독서다.
치킨이 아프리카 노예의 눈물의 먹을거리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이야 어디선가 풍문처럼 들어서 아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우리나라로 건너와 돈가스가 된 ‘돈가츠’가 사실은 일본의 서양 콤플렉스 때문에 탄생한 튀김 요리라는 사실은 이 책을 보고서 처음 알았다. (이참에 2006년에 나왔던 오카다 데쓰의 ‘돈가스의 탄생’(뿌리와이파리 펴냄)도 살펴볼 예정이다.)
이 책의 독보적인 장점 하나는 ‘과학’이다. 대학에서 고분자공학을 공부한 저자는 맛있는 튀김의 중요한 특징인 이른바 ‘겉바속촉’이 어떻게 가능한지 과학 원리를 동원해 설명한다. 감히 말하건대, ‘겉바속촉’을 과학적으로 이렇게 진지하게 따져본 책은 국내는 물론이고 나라 바깥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튀김옷으로 밀가루가 가장 좋은 선택인 이유가 무엇인지, 요리의 풍미를 살리는 캐러멜화 반응과 마이야르 반응의 차이점은 무엇인지 명확히 알 수 있게 된 것도 이 책 덕분이다. 필수 주방 가전이 된 에어 프라이어로 튀기는 원리를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맛있게 요리하는 방법을 알게 되는 것은 덤이다.
이제 저자의 정체가 궁금해질 테다. 나처럼 원래 튀김을 좋아했던 이 과학자는 처갓집이 돈가스 집을 열면서 튀김을 본격적으로 연구해보기로 결심했단다. 언제 기회가 닿으면 이 과학자가 영혼과 과학을 끌어모아 튀긴 돈가스를 꼭 한 번 맛보고 싶다. 그 전에는 ‘튀김의 발견’을 읽으면서 입맛만 다실 뿐이다.
과학책 초심자 권유 지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