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아무거나’는 안 통한다. 요새 사람들은 한 끼를 먹어도 제대로 챙겨 먹는다. 신선 재료에 대한 갈망은 ‘새벽배송’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창출했고, ‘요린이(요리를 잘하지 못하는 어른을 일컫는 말)'들을 구제하기 위한 TV프로그램마저 나왔다. 맛집 한번 가 보겠다고 텐트를 치고 밤새 노숙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나만의 레시피와 다이어트 식단을 공유하며 모두가 미식가가 되는 시대다.
한데, 이 책은 뒤통수를 친다. 진짜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게 맞느냐고 되묻는다. 저자가 요리사나 영양학 전문가쯤 되려나 싶었는데 철학자가 쓴 책이다.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지만 저자의 훈수는 당차다. “제대로 된 음식을 제대로 먹고 싶다면 철학자가 돼야 한다.”
책은 음식과 철학을 연결하려는 시도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데카르트, 헨리 데이비드 소로까지 고대에서부터 현대를 잇는 철학자들이 음식을 어떻게 먹고 마셨는지 식습관의 장단점을 분석하며, 진짜 잘 먹고 잘 사는 법이 무엇인지 찾아 나선다. 또 우리가 알고 있는 음식에 관한 선입견을 판판이 깨트리며 제목 그대로 ‘음식에 대한 거의 모든 생각’을 담아 놨다. ‘알쓸신잡’ 음식 편을 연상케 하는 구성으로 가볍게 읽기 좋다.
철학자야말로 최초의 음식 전문가였다. 위대한 철학자들은 우주의 본질과 진리를 고민하는 것만큼이나, 무엇을 어떻게 먹을 것인가에 대해서도 그 누구보다 깊은 사색을 해 왔다.
최초의 생태학자이자 환경운동가였던 장 자크 루소는 제철과일과 채소, 빵과 치즈, 와인을 즐겼다. “음식은 단순할수록 가치 있다”는 로크에게 유전자 변형 식품을 먹고 사는 현대인들은 불행하기 짝이 없어 보일 거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균형 잡힌 식사를 강조했다.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그것만 먹으면 탈이 나는 게 인간의 몸이다. 원 푸드 다이어트로 살은 뺄 수 있겠으나 몸은 축난다. 저자는 철학자들의 식습관을 분석하며, 무엇을 먹느냐보다 어떻게 먹느냐가 중요하다는 책의 핵심 메시지를 전한다.
현명한 식생활의 원칙을 알려주기 위해 저자가 끌고 온 철학자는 데카르트다. ‘알고 있다고 믿는 것도 충분히 끝까지 의심하라’는 것. 이미 음식에 관한 조언은 차고 넘친다. ‘짜게 먹지 말라’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잔소리 중 하나다. 하지만 저자는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는 증거를 들이민다.
소금은 우리 몸을 파괴하는 나쁜 첨가물 취급을 받지만, 염분이 부족하면 신체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음식을 통해 소금의 적정량을 섭취하지 못하면 불량식품에 손을 댈 수밖에 없다. 소금의 역설이다. 미국에서 가장 큰 식품 영양 전문가들의 조직인 식품 영양학 아카데미는 2015년 저염식을 권장하는 연방정부 방침은 과학적 근거가 불충분하다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조차 소금을 얼마나 먹으면 좋을지에 대해선 여전히 엇갈리는 것.
음식은 때때로 우리를 감쪽같이 속이기도 한다. 우리가 먹는 빵은 ‘진짜’ 빵이 아니다. 밀가루, 약간의 물과 소금, 이스트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부패를 방지하기 위한 곰팡이 제거제를 비롯한 수많은 화학물질을 함께 먹고 있다. 이름만으로도 다이어터들을 설득시키는 저지방 요구르트는 또 어떤가. 지방을 낮춘 만큼 사라진 맛을 보충하기 위해 액상과당 같은 인공감미료를 잔뜩 첨가해놨다. 유지방보다 더 나쁜 정크푸드다. 저자는 저지방 요구르트를 먹으면 살은 더 찐다고 꼬집는다.
“음식은 우리를 만들고,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규정한다.” 저자는 음식을 무턱대고 먹거나, 전문가들 이야기만 곧이곧대로 듣기에 앞서 더 따져 보고 알아보려는 철학자적 태도를 갖자고 말한다. 아무거나 먹다 보면 우리 역시 ‘아무나’가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오늘 뭘 먹을지는 철학만큼이나 심오한 문제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며 비자발적 홈쿡이 많아진 요즘, 내 눈앞의 음식이 의심스러울 때마다 꺼내 보면 언제가는 도움 될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