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람이 정말 징글징글 하요. 이달 초 장맛비랑 작년 태풍 '링링'은 아무것도 아니랑께.”
제8호 태풍 ‘바비’가 전남 목포에 최근접한 26일 오후 8시. 영산강 하구와 바다를 맞대고 있는 목포 평화광장은 ‘암흑 도시’ 그 자체였다. 몰아치는 거센 바람과 육지를 때리는 파도에 사람 그림자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따금 지나는 자동차 불빛만 바삐 길을 갈 뿐 인기척은 전무했다. 여느 때 같았으면 더위를 피해 수 백 명의 시민과 관광객들이 몰려 나와 있을 곳이다. 제주와 전남 지역 곳곳에서 가로수와 가로등은 꺾여나갔고, 전신주도 힘없이 쓰러졌다. 역대급 강풍과 비를 동반한 바비가 서해상을 따라 북상하면서 한반도는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이날 낮 제주도를 시작으로 한반도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바비에 오후 7시 30분 기준 64건의 시설 피해가 발생했다. 거센 바람에 가로수 10여 그루가 쓰러지고, 아스팔트 바닥에 고정돼 있던 철제 중앙분리대 10곳이 손상됐다. 제주에서는 주택 외벽 마감재가 뜯겨 떨어지면서 승합차 한 대가 파손됐고, 또 가로등이 쓰러지면서 인근 다세대주택 2층 창문을 덮쳤다. 인명 피해는 없었다. 강풍을 이기지 못한 신호등과 간판 등이 떨어지는 아찔한 상황들이 밤새도록 이어졌다.
강풍에 전신주가 쓰러지면서 기상 장비가 먹통이 되는가 하면 많은 지역의 주민들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밤새 떨었다. 이날 오후 가거도 자동기상관측 장비에 전원 공급이 끊기면서 제 기능을 하지 못했고, 지역 주민들은 삼킬 듯 몰아치는 바람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신안군 가거도 출장소 윤선민 계장은 “바다가 갈라지는 듯한 바람 소리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휴대폰 전화가 터지는 사실에 안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인근 흑산도에는 순간 최대 풍속이 초속 47m를 기록했다.
당초 예상진로보다 중국쪽으로 ‘좌클릭’ 했음에도 불구하고 바비는 이날 오후 늦게까지 중심 최대 풍속 43m의 강한 태풍의 위력을 유지하며 북상했다. 달리는 기차가 탈선할 수 있는 수준이다.
앞서 지나간 제주공항에는 순간 풍속 32.7m를 기록, 제주를 기점으로 하는 모든 항공편과 선박의 발을 묶었다. 제주와 다른 지역을 잇는 하늘길과 바닷길도 이날 하루 모두 끊기면서 사실상 고립됐다. 한국공항공사 제주지역본부에 따르면 이날 운항 예정이었던 항공편 463편(출발 231편ㆍ도착 232편) 전편이 결항됐다. 제주공항은 ‘셧다운(shutdown)’ 상태에 빠졌다. 제주를 빠져나가려는 일부 관광객들은 공항을 찾았다가 결항 소식에 발길을 돌렸다. 제주 기점 9개 항로 15척의 여객선 운항도 통제되는 등 전날에 이어 이틀째 바닷길이 막히면서 제주도는 완전히 고립됐다.
세찬 바람은 지역에 따라 수백㎜가 넘는 ‘물 폭탄’을 동반했다. 이날 오후 서귀포시 중문동 일대 하수관이 역류하고, 일부 하천이 갑자기 불어난 빗물에 한때 범람 위기를 맞았다. 제주시 도련사거리 인근 도로에서는 지름 약 27㎝ 크기의 싱크홀이 발생해 안전조치가 이뤄졌고,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해안도로 일부 구간이 침수돼 차량 진입이 통제됐다.
전남 영광의 한 주민은 "이달 초 집중 폭우로 큰 피해를 본 작물과 가옥을 수습도 하기 전에 대형 태풍 소식에 한숨만 쉬고 있다"면서 "더 큰 피해가 안 나도록 신경은 쓰고 있지만, 그냥 무사히 지나가 주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충남, 경기, 서울도 태풍 북상에 따라 비상 근무에 들어갔다. 충남도는 연근해 어선 5,669척을 대피시키고, 하천, 계곡, 해수욕장은 전면 폐쇄했다. 또 한국철도(코레일)는 장항선과 경전선, 호남선과 전라선 일부 열차의 운행을 중지하는 등 서해안 일대 지역이 태풍 피해 최소화를 위해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