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 뉴질랜드 성추행 피해자와 '직접 합의' 검토

입력
2020.08.26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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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원하는 방법으로 문제 해결" 기류


외교부가 주(駐)뉴질랜드 한국 대사관에서 발생한 성추행 사건 해결을 위해 2차 '사인(私人) 중재' 검토에 본격 착수했다. 성추행 피해자 측과 직접 대화해 풀겠다는 취지다. 뉴질랜드 정부가 사법 절차를 통해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희박하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이다.

사인 중재는 뉴질랜드 노동법에 따른 분쟁 해결 방법이다. 피고용인이 자신에게 피해를 입힌 고용주에게 위로금 등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한 제도로, 당사자들끼리 합의를 보는 것으로 사건을 종결하는 게 목적이다. 주뉴질랜드 한국 대사관(고용주)과 성추행 피해자인 뉴질랜드 대사관 현지인 직원(피고용인)이 당사자가 된다.

외교부 관계자는 26일 "해당 대사관 직원이 이 달 초 사인 중재 의사를 재차 전달해왔다"면서 "수용 여부를 검토 중"고 밝혔다. 한국 외교관 A씨는 뉴질랜드 대사관에서 근무하던 2017년 현지 직원을 성추행했다. 2018년 외교부 자체 감사를 통해 1개월 감봉 처분을 받았다. 피해자가 별도의 정신적 피해 보상을 요구해 올해 초 사인 중재를 시도했으나, 보상 규모를 놓고 의견이 갈려 4월 이후 멈춰 있다.

외교부는 양국 간 사법절차를 통한 해결을 사실상 포기했다. 뉴질랜드 정부가 범죄인 인도 요청 등 사법 공조를 정식으로 요구하면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거듭 전했지만, 뉴질랜드가 응하지 않는다는 게 외교부 설명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의 지난 달 전화통화에서 저신다 총리가 성추행 문제를 언급한 뒤로 뉴질랜드 정부가 별다른 사법적 노력은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양국 정부가 시간을 끄는 사이 외교부는 '가해자를 비호해 국가적 망신을 사고 있다'는 따가운 시선에 시달리고 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26일 국회에서 '뉴질랜드에는 사과할 수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면서 논란이 더 커졌다. 외교부가 피해자의 중재 요구를 다시 한 번 검토하기 시작한건 어떻게든 문제를 빨리 수습해야 하는 처지 때문이다.

그러나 협상 환경은 외교부에 불리하다. 가해자 입장인 외교부가 강한 협상력을 발휘하긴 어렵다. 그럼에도 외교부 안팎엔 '시간을 끌지 말고 피해자의 요구를 가능한 들어 주자'는 기류가 있다.

한편 26일 뉴질랜드 외교통상부는 전날 강경화 장관의 발언에 대해 "경찰이 다루는 사안으로 외교부로서는 더 언급할 게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조영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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