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 계급사회'라도 우리는 빛나잖아

입력
2020.08.27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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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방영되는 SF8 '우주인 조안' 눈길
이윤정 감독 "계급은 개인을 정의 못해"


"하아... 하아... 엄마, 나 이것 좀 벗고 있으면 안 될까? 바깥 공기도 안 들어오는데..."

자율주행차 속 한 소녀가 우주복과 흡사한 이른바 강화청정복을 입고 괴로워한다. 헬맷 실드(투명보호창)에 더운 김이 서려있다. 차창 밖은 온통 뿌옇다. 이 세계는 하늘색의 의미마저 뒤틀렸다. 하늘색은 더이상 파란색에 흰 물감을 떨어뜨린 색이 아니다. 공장 굴뚝에서 나오는 짙은 연기에 강황 가루를 뿌려 놓은 듯한, 그런 색이 곧 '하늘색'인 시대다.

코로나19가 창궐하고 있는 2020년 지금 이 시점에서 상상해본 미래의 모습이 이런 걸까. 미세먼지로 뒤덮인 2046년을 배경으로 한 이윤정 감독의 '우주인 조안' 첫 장면이다. 과학소설(SF) 원작을 토대로 8명의 감독이 8가지 미래를 그린 SF 시리즈 'SF8' 중 하나다. SF8 시리즈의 기대작이자, 시리즈를 총괄기획한 민규동 감독이 가장 흥미로운 작품으로 꼽았던 '우주인 조안'이 28일 오후 10시 10분 MBC에서 방영된다.

김효인 작가의 SF 단편 '우주인, 조안'을 원작으로 둔 이 작품에서 인류는 두 부류로 나뉜다. 생후 6개월 안에 고가의 항체주사를 맞은 자와 그렇지 못한 자. 미세먼지 항체를 가진 C(Clean)는 100년을 살고, 나머지 N(Non-Clean)은 30년밖에 살지 못한다.

미세먼지보다 더 큰 재앙은 차별이다. 그럼에도 '우주인 조안'은 미세먼지로 계급이 나뉜 세상을 살아가는 청춘들의 삶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어느 시대든 존재하는, 가슴 뛰는 사랑 이야기다.

'우주인 조안'은 C인줄 알았지만 병원 측 착오로 항체주사를 맞지 못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대학생 이오(최성은)와 교내에서 유일한 N인 조안(김보라)의 이야기를 다룬다. C인줄 알았으나 N이란 사실을 깨달은 이오는, 자기 대신 항체주사를 맞은 사람을 조안과 함께 찾아나선다.



그런데 이 둘이 묘하다. 차별에도 불구하고 N인 조안의 삶은 암울하지 않다. "진짜로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면, 네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면서 살아야지. 나는 하루에 좋아하는 일을 3개씩은 해야 잠을 자"라고 당당히 말한다. 열 세살이면 취업, 결혼, 출산 같은 모든 일을 스스로 결정해야 하기에, 오히려 N은 지금 현재를 온전히 즐길 줄 안다.

반면 오래 살기 위해 몸에 해로운 모든 것을 금지당한 채 살았던 이오는 모든 게 서툴다. 조안과 함께 하고서야 난생 처음 커피를 마시고, 비도 맞는다. 자연스레 웃고 떠들고 숨쉬는, N의 삶이 되레 부럽다. 두 사람의 시선은 C와 N이라는 계급 차이를 넘어 자연스레 포개진다.

특기할만한 점은 소설에서 이오는 남자, 조안은 여자였지만 SF8에선 둘 다 여성으로 나온다. 두 사람의 마음이 살금살금 다가가 마침내 서로 맞닿는 몇몇 장면들은 빼어나게 아름답다. 조명, 미술, 의상마저 환상적이다. 동성애에 대한 차별적 시선에서 벗어나 두 또래 여성의 관계를 그려낸다. 이윤정 감독이 '우주인 조안'을 두고 "퀴어 청춘 멜로 성장물"이라 일컫는 이유다.

이 감독은 이오와 조안을 맡은 두 여배우를 꼭 눈여겨 봐달라 했다. "10년, 20년 후 전설적인 캐스팅으로 남을지도 모른다"고까지 했다. 영화 '시동'에서 빨간 머리로 이름을 알린 배우 최성은은 "눈이 좋아서" 스토리텔러로서 강점이 있고, 드라마 '스카이 캐슬'에 출연해 알려진 김보라는 "천재인가" 생각했다며 극찬했다.

이 감독은 여기에다 소설에 없던 한가지 장치를 더했다. C와 N 이외에도 'NCC(Non-Clean but Clean)'라는 존재를 설정한 것. NCC란, 항체주사를 맞지 못했으나 강화청정복을 빌려입고 C처럼 살고자 하는 이들이다. 극중에선 이오의 친구, 의사 경(윤정훈)으로 등장한다. "태어날 때 결정된 격차를 어떻게든 따라잡기 위해 애쓰는 그룹"으로 설정된 것인데, 덕분에 SF적 설정임에도 극의 현실성은 한층 더 짙어졌다.



결말에는 반전이 숨어있다. 이 감독은 단호했다. "계급으로 나눠진 세상 속에서도 개인은 모두 연결돼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개인은 생각보다 더 많은 선택지를 갖고 있을지도 모르고, 정해진 계급이 개인을 정의할 수도 없고, 시스템 오류로 잘못 정의되기도 하니까요."

권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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