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 다 가는 곳은 싫어'…신혼여행 신흥강자 '울릉도'

입력
2020.10.03 14:00
코로나19가 바꾼 신혼여행 풍경 ②
제주도·부산도 있는데… '울릉도' 왜 갈까


<1> "해외보다 낫더라" 신혼여행 성지된 제주도

서울 성동구에 사는 직장인 장현경(32)씨는 3월 7일 결혼식을 치르고 5개월이 지난 7월 19일에야 울릉도·독도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뉴욕·칸쿤 여행을 포기했지만, 이왕이면 종종 가봤던 제주도보다 새로운 장소를 찾고 싶었다.

청정자연을 자랑하는 관음도 앞에서 그는 이내 속상한 마음이 사라졌다. "친구들이 제 신혼여행 사진을 보고 우리나라에 이런 곳이 있었냐고 놀라더라고요. 해외 휴양지가 부럽지 않았고, 오히려 훨씬 더 좋은 경험을 쌓은 것 같아요."

코로나19 영향으로 출국 기회가 막힌 신혼부부들에게 제주도 다음으로 인기가 많은 신혼여행지는 울릉도·독도다. 날씨와 파도의 변수로 입도가 쉽지 않은 울릉도는 아무때나 갈 수 없는 여행지일 뿐더러, 역사적 가치도 있어 신혼여행의 의미도 더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25년 울릉공항 완공 계획 소식이 전해지면서 더 복잡해 지기 전에 울릉도를 가보려는 수요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루 평균 5팀은 신혼부부" 신바람난 울릉도


과거 중년들의 패키지 여행 장소로만 여겨졌던 울릉도도 코로나19 이후 이색 신혼여행지로 거듭났다. 울릉도의 대표 리조트인 힐링스테이 코스모스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까지 울릉도로 신혼여행을 오는 부부들이 거의 없었는데, 코로나19 이후 비수기인 6~7월부터 하루 4, 5팀 정도 (신혼부부들이) 예약하고 있다"며 "11월 말까지 객실 예약이 끝났고, 12월도 80% 예약 상태"라고 전했다.

울릉도군청에 따르면 코로나19가 확산한 3월 여행객 수 1,781명을 기록한 울릉도는 4월 5,823명, 5월 2만667명, 6월 2만6,864명, 7월 2만4,641명, 8월 5만 1,139명으로 확실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9월 들어서는 코로나19 재확산과 태풍으로 23일부터 배가 안 떠서 관광객이 줄었으나 1~23일까지 6,816명이 울릉도를 찾았다. 울릉도군 관계자는 "최근 태풍 영향으로 관광객 수가 주춤하긴 했으나, 올 가을 이후 울릉도 신혼여행을 준비하는 관광객들이 계속 늘고 있다"고 밝혔다.

젊은 관광객의 발길이 잦아지면서 리조트는 신혼부부를 위한 이벤트도 마련했다. 힐링스테이 코스모스는 최근 신혼부부에게 와인이나 치즈 플래터, 케이크 등을 무료 제공하거나,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무료로 빌려주는 '허니문 패키지'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신혼부부, 울릉도로 모이는 이유는


경기 평택에 사는 직장인 최은정(31)씨는 신혼여행으로 7월 5일부터 2박3일 울릉도를 다녀왔다. 비록 해외는 못 갔지만, 평소 버킷리스트가 울릉도에 가는 것이어서 실망감이 크지는 않았단다. 울릉도는 배를 타고 입도해야 해 평소 도전하기 쉽지 않았던 만큼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마저 들었다는 것.

6월 1일 울릉도를 찾은 주부 김나선(36)씨도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울릉도는 접근성이 떨어지는 만큼 신비감이 있어 내심 기대가 됐다"며 "공항이 생기면 상업화가 빠르게 이뤄질 것 같아 미리 가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고 밝혔다.

신혼부부들은 울릉도가 숙박이나 관광시설이 육지와 비교해서는 조금 떨어지지만, 그만큼 남들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편하게 휴가를 즐길 수 있었다고 했다. 사진 촬영을 위한 예쁜 원피스보다는 등산복에 운동화를 신고 파도 소리를 들으며 해변가를 트레킹하는 식이다.

7월 19일 울릉도로 떠난 장현경(32)씨는 울릉도가 때묻지 않아 좋다고 했다. 상업화가 진행돼 여행객이 넘쳐나는 여느 관광지와 달리, 울릉도는 한가롭고 훼손되지 않은 청정 자연을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울릉도에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릴 만한 예쁜 카페도, 이렇다 할 맛집도 없어 꾸미고 다닐 필요가 없더라고요. 소음도 없고 사람도 많지 않은 곳에서 신랑과 편하게 휴가를 즐긴 것 같아요."


울릉도에선 뭐하고 놀까


울릉도에서만 체험할 수 있는 이색 경험도 있다. 울릉도의 별미 '독도새우'다. 독도새우는 한 접시에 10만원이 훌쩍 넘는 고급 식재료지만, 최씨는 "탱글탱글한 첫 맛을 잊을 수가 없다"며 울릉도를 가면 꼭 먹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울릉도는 육지와 먹거리, 볼거리가 달라 뭐든 다 처음 경험해보는 것"이더라며 "해외 만큼이나 모든 경험이 신선하게 느껴졌다"고 했다.

평소 낚시가 취미인 김씨는 울릉도에서 보내는 일정 중 하루를 낚시투어로 정했다. 오후 2시부터 밤 9시까지 사동항 등 항구 곳곳을 돌며 신랑과 바다낚시를 즐겼다. 이날 용치놀래기를 네 마리나 잡았지만, 주변을 맴돌던 갈매기들에게 모두 뺏겨 돌아올 때는 빈손이었단다.

"괌이나 동남아 바다처럼, 물이 새파란데 안은 또 투명하더라고요. 물이 깊은 데도 헤엄치는 물고기들이 훤히 다 보여서 낚시 욕구가 샘솟았어요. 갈매기에게 물고기를 모두 뺏겼지만, 신랑과 오붓한 추억은 잊지 못할 것 같아요."

스노쿨링, 스쿠버다이빙 체험도 최근 젊은 층 사이에 인기를 끌고 있다. 저동리에 위치한 다이빙 전문 업체 '아쿠아캠프'를 이용하면 죽도, 관음도, 행남등대 등 울릉도의 대표 다이빙 포인트를 감상할 수 있다. 초보자도 전문 다이버 강사의 도움을 받아 1시간~1시간30분 정도 교육을 받으면 기본 다이빙 투어를 즐길 수 있다.


"독도를 가면 애국자가 된다더니…"


장씨는 무엇보다 독도 방문이 기억에 남는다. 독도는 파도가 높으면 접안이 어려워 배에서 바라봐야 할 정도로 입도하기 힘든 곳인데, 신랑과 함께 하니 더욱 뜻깊었다. 애초 배를 예약했던 날짜는 파도가 세서 결항됐는데, 부부는 못내 아쉬워 일정을 바꿔 하루 더 머무르며 배를 기다렸다.

장씨는 "독도에 가면 애국자가 된다고 하던데, 땅을 직접 밟아보니 진짜 우리 땅이라는 것이 와 닿고 가슴이 뭉클해지더라"라며 "이런 특별한 경험을 남편과 함께 할 수 있어서 더 좋았다"고 했다.

여행 첫째날 독도를 방문했다는 김씨는 "평생 독도를 올 기회가 지금 아니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갔다"며 "파도 때문에 독도에는 10분도 못 있었지만, 땅에 발을 디뎠다는 자체만으로 감격스럽더라"고 했다.


울릉도 신혼여행, 이것만은 챙기자


신혼여행이라 한껏 꾸미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이들은 울릉도 신혼여행을 준비 중인 예비신부들에게 운동화를 신을 것을 당부했다. 울릉도의 속살을 보려면 트레킹이 필수인데, 돌이 많고 길이 험해 자칫 비싼 옷과 신발이 망가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최씨는 "나리분지를 걷다 산책하기 좋은 코스인 듯해서 깃대봉을 올라갔는데 길이 험해 힘들더라"며 "그 와중에 나는 원피스가 망가질까 신랑은 신발이 망가질까 신경쓰느라 정신이 없었다"고 웃었다.

울릉도의 트레킹 코스는 행남등대~도동(1시간 30분), 내수전~석포(1시간 50분), 남양~태하(2시간), 태하등대~황토굴(30분) 등이 있다. 산행이 익숙하다면 나리분지, 신령수, 성인봉 등을 거치는 대원사 코스(6시간)로 등산에 도전해도 좋겠다. 최씨가 가벼운 마음으로 나섰다가 진땀을 뺀 곳은 나리분지에서 알봉둘레길, 깃대봉, 울릉천국을 거치는 4시간짜리 산행길이다.

이소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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