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25일 ‘뉴질랜드 외교관 성추행’ 의혹과 관련해 피해자와 뉴질랜드 정부에 대한 사과를 공개적으로 거부했다. 대신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선 “대통령이 불편한 위치에 계시게 된 점에 대해서는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거듭 고개를 숙였다. 지난달 28일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와 정상통화에서 ‘외교관 성추행’ 의혹이 거론돼 대통령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 데 대한 사과였다. 외교관계를 우선에 둬야 할 외교부장관이 대통령을 향한 '충성'에만 치중하는게 적절하느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강 장관은 이날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뉴질랜드 정부와 피해자에 대해서는 사과를 안 하는 것인가’라는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질의에 “상대국에 대한 사과는 쉽사리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라며 이같이 밝혔다.
강 장관은 그러면서 정상간 통화에서 사전 조율되지 않은 의제를 불쑥 꺼낸 뉴질랜드 정부를 향한 불편한 심기도 내비쳤다. 그는 “정상 간 의제가 되지 않아야 될 사안이 의제가 됐다. 그건 뉴질랜드 책임”이라며 “이 자리에서 사과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외교관 A씨는 2017년 주뉴질랜드 대사관에서 근무 당시, 현지 남자 직원의 엉덩이를 손으로 만지는 등 세 차례에 걸쳐 성추행한 혐의를 받는다. 이에 외교부는 2018년 자체 감사를 실시, A씨에게 감봉 1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A씨가 징계를 받았다는 건, 정도가 어찌됐든 외교부가 A씨 잘못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강 장관이 피해자에 대한 사과를 대놓고 거부한 건 부적절한 처사라는 지적이 나온다. 더구나 강 장관은 외교적 언사를 구사해 상대국과 우호관계를 유지하도록 하는 정무적 위치에 있다.
그러나 강 장관은 문 대통령에 대한 심기 경호와 국민에 대한 사과 등 대내적 메시지에만 치중하는 모양새다. 그는 전날 외교부 실국장 회의에서도 “2017년말 주뉴질랜드 대사관에서 발생한 성 비위 사건이 지난달 28일 정상통화 때 제기돼 우리 정부의 외교적 부담으로 작용했다”며 “국민께 심려를 끼쳐드리게 돼 송구스럽다”고 밝혔다.
이날 외통위에선 여당 의원들도 성추행 피해자나 국격 훼손보다 문 대통령의 안위를 더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김영호 민주당 의원은 “정상통화에서 (성추행 문제가 불쑥 나와) 문 대통령이 얼마나 난감했겠느냐”며 “외교부에서 큰 실수를 했다”고 질타했다.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 출신인 같은 당 윤건영 의원도 “정상간 외교에서 성 비위 사건이 거론된 적이 한국 외교사에 있었느냐”며 “외교부가 정상간 회담에서 의제 관리를 제대로 못한 점을 인식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