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규모 난민, 가장 박해 받는 소수민족. 2017년 8월25일 이후 미얀마 군부의 유혈탄압을 피해 방글라데시로 도망친 로힝야족을 설명하는 가슴 아픈 수식어다. 3년이 지난 현재, 안타깝게도 로힝야족 앞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전염병(코로나19)에 가장 취약한 집단”이라는 타이틀이 또 하나 붙었다. 가뜩이나 열악했던 삶의 환경이 감염병 창궐에 안성맞춤 조건이 되면서 어렵게 이어온 생존의 끈마저 송두리째 끊길 위기에 놓였다.
15세기 남아시아 무슬림들이 미얀마의 옛 아라칸주(현 라카인주) 일대로 이주하면서 시작된 로힝야족 역사는 주변을 장악하고 있던 불교 세력과의 갈등으로 점철돼 있다. 특히 3년 전 미얀마 군부의 박해를 견디다 못한 ‘아라칸 로힝야 구원군(ARSA)’의 항전 선포는 대학살을 촉발한 신호탄이었다. 군부는 무자비한 토벌 작전을 통해 최소 7,000여명의 양민을 사살했으며, 수많은 여성들을 성폭행했다. 이에 130여만명에 달하던 로힝야족 중 64만여명이 국경을 접한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지역으로 황급히 도망쳤다.
고향을 잃은 로힝야족은 다행히 방글라 정부의 우호적인 수용 정책 덕분에 난민촌을 형성할 수 있었다. 문제는 허용된 난민촌 대지가 너무 협소한데다, 수도 위생 등 기초적인 생활 인프라가 전혀 구비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나무에 비닐을 이어 만든 허름한 움막을 제외하면 식수와 화장실조차 없었다. 이후 미얀마 다른 지역에 사는 로힝야족들까지 끊임없이 콕스바자르로 밀려들면서 난민촌 인구는 110만명에 육박했다. 인구밀도는 ㎢당 4만명에 달했고, 일인당 하루 물 소비량도 한국의 20분의 1에 못 미치는 11ℓ까지 떨어졌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미얀마 정부의 완강한 거부에 난민들은 현지 정착을 시도할 수밖에 없었다. 미얀마 정부는 유엔 최고법정인 국제사법재판소(ICJ)의 사태 해결 명령에도 로힝야족을 여전히 ‘벵갈리(방글라데시 출신 불법 이주민)’로 규정하고, 이들을 받아들일 시늉조차 내지 않고 있다. 이에 성인 남성들은 콕스바자르 일대에서 막노동과 잡일 등으로 생계를 꾸리기 시작했고, 18세 미만 청소년 50여만명 중 일부는 임시 학교로 등교했다. 이슬람 전통에 따라 외부 경제활동이 금지된 여성들은 난민촌 안에서 의류 수선 등을 하며 구호품에만 기대지 않고 자립 터전을 꾸리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올 초 시작된 코로나19 사태는 모든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과밀 인구와 비위생적인 주거 환경은 코로나19 전파에 더할 나위 없는 조건이었고, 부족하기만 한 식수는 기초 방역 수단인 ‘손씻기’마저 불가능하게 했다. 여기에 방글라 당국의 난민촌 봉쇄령까지 떨어지자 로힝야족들의 비루한 일상은 공포로 바뀌었다. 4월부터 말레이시아를 향한 밀입국 시도가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만큼 진행됐는데, 이 과정에서 수천명이 바다에서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산된다. 남은 이들의 삶도 지옥이긴 마찬가지다. 가정폭력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데 이어 실직자들이 아동 납치와 인신매매ㆍ강도 등을 일삼으며 범죄자로 둔갑했다.
코로나19로 무너진 로힝야족의 삶은 수치로도 드러나고 있다. 22일 기준 세계보건기구(WHO) 집계에 따르면 5월 난민촌 내 첫 코로나19 확진 환자 발생 이후 총 88명이 감염되고 6명이 사망했다. WHO 측은 “최근까지 방글라 당국이 진행한 검사가 3,886건밖에 되지 않아 실제 감염자는 훨씬 더 많을 것”이라며 “구호단체의 난민촌 진입도 대부분 막혀 현장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와 관련, 유엔 인권이사회는 6월 ‘미얀마 인권 상황 결의안’을 내놓으며 로힝야족 문제 해결을 재차 촉구했지만, 현지 정부는 여전히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