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미국에 맞설 '진용'을 구축하기 위한 광폭 행보에 나섰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과의 '대면 외교' 재개에 이어 곧바로 우군 확보를 위한 유럽 순방외교를 시작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미국이 동맹국들을 압박해 반중 전선을 구축하자 중국은 '다자주의'를 기치로 전선을 넓히며 폭넓은 지지를 얻는 데 주력하고 있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25일 유럽으로 출국했다. 이탈리아를 시작으로 내달 1일까지 네덜란드ㆍ노르웨이ㆍ프랑스ㆍ독일 등 5개국을 순방한다. 아시아 국가들을 공략하는 '외교 대회전'이 끝나자마자 유럽으로 범위를 확장하는 것이다. 앞서 양제츠(楊潔篪)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원은 싱가포르(19~20일)ㆍ한국(21~22일)을 방문했고, 왕 국무위원은 중국으로 인도네시아(20일)ㆍ파키스탄(21일)ㆍ베트남(23일) 외교장관을 잇따라 초청했다.
왕 국무위원은 전날 베이징에서 페테르 시야르토 헝가리 외교장관과 회담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유럽연합(EU) 회원국 정부 대표의 첫 중국 방문이었다. 지난달 홍콩보안법을 시행하자 EU가 반발하며 중국에 강경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할 당시 헝가리는 그리스 등과 함께 줄곧 중국을 두둔해온 우호국이다. 왕 국무위원은 "중국은 유럽에 더 큰 내수시장과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면서 "일방적으로 글로벌 산업사슬을 방해하거나 정상적인 국제경제 교류를 해치려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고 미국을 겨냥했다.
중국은 미국의 전열을 흔들기 위해 동맹의 '틈새'인 유럽을 활용해왔다. 미국과의 무역전쟁이 가열되던 지난해 3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방문해 50조원이 넘는 '돈 보따리'를 풀었다. 당시 EU 정상들은 전략보고서에 처음으로 중국을 '경제적 경쟁자'이자 '체제 경쟁의 라이벌'로 규정하며 대중 경계령을 내렸지만, 막대한 '차이나 머니'의 위력 앞에 유럽 국가들은 각자도생으로 흩어질 수밖에 없었다.
시 주석은 당초 9월 유럽을 찾아 EU 회원국 전체와 사상 첫 정상회의를 가질 예정이었다. 지난해 아프리카 53개국 정상을 베이징으로 초청해 아프리카 대륙 전체와 우의를 다지는 모양새를 과시한 전례도 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회의는 기약 없이 미뤄진 상태다. 따라서 왕 국무위원의 유럽 방문이 화상회의 방식의 첫 정상회의 개최로 이어질지도 주목할 만하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이번 유럽행은 중국을 겨냥한 범대서양 단일 전선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