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정희(57ㆍ사법연수원 19기) 대법관이 24일 ‘사법농단’ 사건 재판에서 옛 통합진보당 행정 소송을 심리할 당시 상황에 대해 “법원행정처로부터 문건을 받거나 영향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증언했다. 사법농단 사건에 대한 현직 대법관의 법정 증인 출석은 지난 11일 이동원(57ㆍ17기) 대법관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부장 윤종섭)는 이날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혐의로 기소된 임종헌(61ㆍ16기)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속행 공판에 노 대법관을 불러 증인 신문을 진행했다. 노 대법관은 2016년 광주고법 재직 당시 옛 통진당 비례대표 지방의회 의원이 낸 ‘퇴직처분 취소 및 지위확인 소송’의 항소심 재판장을 맡았다.
노 대법관은 이날 “법원행정처로부터 재판과 관련된 문건을 받은 적이 없다”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이건 제가 아무리 기억을 뒤집어도, 설사 시간이 지나서 기억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더라도, 그걸 다르게 기억할 수는 없겠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검찰과 변호인의 신문이 끝난 뒤, 재판부가 재차 “문건을 안 받은 것이 맞냐”고 확인했을 때에도 그는 “제 기억으로는 그런 사실은 없었다고 확실하게 말하겠다”고 답했다.
이 같은 노 대법관의 증언은 사법농단 사태의 핵심 인물인 임 전 차장에 대한 검찰의 공소사실과는 정면으로 배치된다. 검찰은 “임 전 차장 등이 (통진당 소송의) 1심 판결 결과가 항소심에서도 유지되도록 노 대법관에게 전화한 이후 ‘법원행정처가 수립한 판단방법’ 문건을 전달했다”고 주장해 왔다. 당시 1ㆍ2심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헌재 결정을 근거로 지방의원직 박탈을 통보한 건 잘못”이라고 판단한 데에는 법원행정처의 개입이 있었다는 것이다.
노 대법관은 그러나 당시 항소심이 1심 판단을 유지한 것은 재판부의 ‘자체 판단’이라고 밝혔다. 2016년 3월 항소심 선고 이전에 이규진(58ㆍ18기) 당시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과 전화 통화를 한 건 사실이지만, 재판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았다고도 했다. 노 대법관은 당시 통화에 대해 “개인적인 안부를 묻는 게 대부분이었고, 소송과 관련해서는 대법원 소속이 아닌 국제인권법 학회장으로서 회원들의 검토 결과를 전달해 주는 것으로 생각했었다”고 증언했다. 다만 그는 “그쪽에서 먼저 재판 얘기를 하는 게 기분이 좋지 않았다”면서 통화를 조기 종료하려고 했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이날 노 대법관을 상대로 “당시 이민걸 법원행정처 기조실장이나 이규진 양형위원과 통화한 당일, 해당 사건을 조회하거나 1심 결과를 인쇄한 기록이 있다”면서 법원행정처가 영향을 미친 게 아니냐고 캐묻기도 했다. 이에 대해 그는 “왜 그때 검색을 했는지 정확한 경위는 기억나지 않는다”고만 짧게 답했다.
노 대법관은 이날 증언을 마친 뒤 “이 건과 관련해서 왜 하고 싶은 말이 없겠느냐”면서도 “증인으로 출석한 것이고 사실만을 진술해야 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특별한 말씀은 드리지 않겠다”고 소회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