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떠나고 바이든이 오면 화웨이는 무사할까

입력
2020.08.26 15:00
24면

편집자주

국내외 주요 흐름과 이슈를 해당 분야 전문가들이 깊이 있는(deep) 지식과 폭넓은(wide) 시각으로 분석하는 심층 리포트입니다

최근 심화되는 미중 무역갈등의 중심에는 중국기업 ‘화웨이’가 있다. 미국은 지난 17일 화웨이와의 거래를 전면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발동했는데, 미국 특허청에 등록된 특허를 사용하는 제3국의 기업이 화웨이와 거래하는 것까지 포괄적으로 규제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삼성전자를 비롯한 거의 모든 기업이 인텔, 퀄컴, 구글, AMD 등 미국 특허를 사용 중이므로 영향력이 엄청난 규제다. 얼핏 미중 자존심 싸움처럼 보이는 화웨이를 둘러싼 갈등의 이면에는 빠르게 확산된 자유무역에 대한 반작용, 디지털 경제에 대한 패권, 정치적 갈등과 복잡한 외교 셈법까지 다양한 이슈가 얽혀 있다.


화웨이 문제는 오래 축적된 갈등

화웨이 문제의 발단은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2009년 이후 고조된 분리주의 움직임과도 궤를 같이 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촉발된 경기침체는 민족주의와 분리주의를 강조하는 정부 등장을 초래했다. 미국이 주도해온 자유무역주의, 유럽연합의 단일 화폐권에 대한 반작용으로 반이민정책과 자국 우선주의가 대두된 것이다. 영국 스코틀랜드의 독립운동,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과 이탈리아 북부의 분리주의, 영국의 브렉시트(BREXIT)가 대표적인 사례다. 각 정부는 자국·자원 보호에 민감하게 반응해 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의 ‘기술굴기’가 내세운 화웨이는 여러 기술보안 스캔들을 일으키면서 논란의 중심에 섰다. 2011년과 2012년 영국과 이탈리아의 네트워크에서 정보유출을 일으킬 수 있는 백도어에 대한 논란이 있었고, 2016년 미국으로 수출된 핸드폰에서도 비슷한 이슈가 제기되어 각국의 실태조사가 있었다. 이후 각국 안보기관의 조사 끝에 미국, 영국, 호주, 인도, 프랑스, 이탈리아 등 많은 나라에서 사용금지 또는 관공서 사용을 제한해 사회적 논란과 대립이 고조되고 있다.


왜 화웨이가 갈등의 핵심에 있나

화웨이 문제가 자국 중심주의의 연장선상이라면, 왜 하필 화웨이만 주요 타깃이 되고 있을까. 그간 화웨이가 선진국 핵심기술·고객 데이터의 유출 등 꾸준히 논란에 휘말린 탓이기도 하지만, 화웨이 주력 제품 중 하나인 5G 장비가 앞으로 도래할 디지털 경제의 핵심 자원이기 때문이다.

5G 기술의 핵심은 빠른 데이터 송수신 속도다. 송수신 지연시간이 1,000분의 1초 미만으로 5G 단말기는 ‘실시간 빅데이터 수거장치’라 할 수 있다. 5G에서는 빠른 데이터 속도에 힘입어 자율주행, 안면인식 CCTV, IoT 기반 스마트 팩토리 등 다채로운 디지털 서비스가 가능한데, 문제는 5G 장비가 이러한 디지털 전환기술을 구현하는 플랫폼적 성격을 띤다는 것이다. 5G 장비는 데이터 통신의 규격과 업그레이드를 좌우할뿐 아니라 이를 기반으로 다양한 제품·서비스 개발이 이뤄지기 때문에, 장비 플랫폼의 종속은 부대 기술들의 연쇄적인 종속을 초래할 수 있다. 즉 플랫폼 자체보다 플랫폼을 통해 이뤄지는 부가가치 창출이 더 값질 수 있기 때문에 누가 플랫폼을 선점하느냐가 중요하다.

더욱이 데이터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노동과 자본을 대체할 수 있는 핵심 자원이자 국가의 경제활동을 투영하는 거울이다. 데이터의 흐름을 외국 통신장비 업체에 맡긴다는 것은 보안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때문에 빅데이터, 인공지능, 블록체인 등 디지털 기술혁신의 선두를 달리는 미국 입장에서는 플랫폼적 성격을 갖는 5G 기술의 패권을 지키고 데이터 안보를 걱정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는 것이다.


화웨이 제재 동참, 복잡한 외교 셈법

미국의 화웨이에 대한 꾸준한 압박에도 주변국의 반응은 정치적 상황에 따라 변해 왔다. 미국 우방인 캐나다, 호주와 국경문제로 중국과 갈등을 빚어 온 인도 등은 미국의 화웨이 제재에 발맞춰 왔다. 다만 유럽연합의 경우 미국의 지속적 요청에도 회원국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입장이었는데, 올 초만 해도 화웨이에 다소 우호적이었던 분위기가 부정적으로 바뀌고 있다. 정치적으로 미국과 상반된 결정을 해 온 프랑스가 최근 화웨이 사용 자제를 공식적으로 권고했다. 영국도 한때 화웨이 장비를 비핵심 분야에 한해 최대 35%까지 허용해 미국의 반발을 샀지만, 중국의 홍콩보안법 통과를 계기로 2027년까지 단계적으로 화웨이 5G 장비를 퇴출하기로 했다.

최근 로버트 스트레이어 미 국무부 차관보가 화웨이 사용 기업들을 압박하며 우리나라의 LG유플러스를 지목하는 등 미국의 압력이 강해지는 가운데, 중국은 우리에게 화웨이 사용을 요청하고 있어 신중한 고민이 필요하다. 현재 우리와 비슷한 상황의 국가는 독일이다. 독일은 유럽 국가 중 對 중국 수출의존도가 크며 도이치 텔레콤 등 일부 기업은 독일이 강력히 추진해 온 ‘Industry 4.0’의 차질이 우려된다며 화웨이 사용을 지지하고 있다. 그러나 설비의 종속, 데이터 보안 등 독일 내 우려도 만만치 않기에 실태조사와 사회적 논의를 거쳐 10월에 결론 내기로 한 상황이다.

미 대선 이후에도 화웨이 견제 지속될까

일각에서는 오는 11월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국면이 전환되리라 예측하지만 대선과 무관하게 긴장은 당분간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앞서 설명한 바 같이 화웨이 이슈는 반글로벌화에 따른 자국 우선주의 대두, 기술유출 논란, 기술 종속성 이슈, 데이터 안보 등이 복합적으로 누적된 결과라 집권 정당이 바뀐다고 극적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다만 공화당과 민주당의 자유무역에 대한 입장차나 외교 전략상의 온도차는 있을 수 있다.

트럼프 정부가 제3국의 기업과 화웨이 간 거래까지 원천 봉쇄하는 전례 없는 초강수를 둔 것은 대선이라는 정치적 상황을 경제적 이슈로 극복하려는 노림수로 보인다. 중국 견제는 그간 트럼프 정부가 줄기차게 주장해온 ‘강한 미국’의 연장선상에 있고, 최근 코로나19 확산 등 정치적 호재가 없는 상황에서 화웨이 이슈가 지지층을 결집하는 국면 전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더욱이 CIA, FBI, 미 하원 등 국내기관들이 화웨이 정보 보안에 대해 누차 경고해 온 것도 트럼프 정부에 좋은 명분이 되고 있다. 만약 바이든이 집권한다면 상대적으로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와 정치적으로 차별화된 노선을 걸으며 ‘중재자로서의 미국’을 강조하고 현재의 행정명령 같은 초강수를 둘 가능성은 낮다. 여기에는 글로벌 가치사슬로 연결된 세계경제 특성상 중국 제재가 격화될수록 미국의 경제적 손해도 커진다는 복잡한 셈법이 존재한다.

이 같은 두 대선주자의 온도차에도 중국 견제가 지속된다고 전망하는 데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미국은 반도체 산업에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시장을 강조하는 미국의 특성상 체계적인 산업정책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과거 미국 반도체 산업의 태동은 연방정부의 대규모 연구개발 투자와 혁신지원 기관의 체계적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1990년대 일본이 부상하면서 반도체 산업의 주도권을 어느 정도 넘겨줬고, 메모리 등 일부 영역에서는 한국, 대만, 중국 등 후발주자의 추격을 허용하게 됐다. 미국은 새롭게 부상하는 디지털 경제의 패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처음부터 위협이 되는 경쟁국을 강력히 견제할 가능성이 크며, 디지털에 엄청난 재원을 투자하고 있는 중국이 주요 타깃이 될 수 밖에 없다.

둘째, 디지털 경제의 플랫폼적 특수성이다. 디지털 경제는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플랫폼의 ‘승자독식’이 보편적이기 때문에 초기 시장형성기에 주도권 싸움이 거세다.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이 그 자체로는 효과적인 수입원이 되지 못하지만, 많은 사용자에 기반한 ‘네트워크 효과’ 덕분에 이모티콘 결제, 아이템 선물, 카카오 뱅크 등 부가서비스를 통해 다양한 가치를 창출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마지막은 데이터 보안 이슈다. 디지털 경제의 패권은 데이터를 많이 확보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자가 장악하게 된다. 여러 데이터가 서로 연결되어 시너지를 창출하는 디지털 경제 특성상 통신보안은 경제적, 정치적으로 첨예한 이슈가 될 수 밖에 없다. 유럽연합이 구글 같은 미국 데이터 기업들을 견제하기 위해 개인정보보호규정(GDPR)을 만든 것도, 여러 논란에 중심이 되었던 화웨이에 대해 각국이 우려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적어도 정부나 공공기관에서의 자국 또는 검증된 장비 사용을 강조하는 이유다.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미중 무역갈등으로 화웨이 이슈가 불거졌지만 차후 유사한 문제가 반복될 수 있다. 지난해 한일 정치적 갈등으로 일본이 불화수소 수출을 제한하면서 우리 기업이 어려움을 겪었고, 코로나19로 석유수요가 줄어든 상황에서 러시아는 미국 셰일가스 업체 견제를 위해 원유를 증산, 자원을 무기화한 바 있다. 이러한 자국 우선주의와 기술·자원의 안보 움직임에 대응해 단기 및 중장기 전략 수립이 필요하다.

단기적으로는 국가 차원의 방향성을 밝히지 않고 개별 기업의 대응에 맡기는 것도 좋은 전략이 될 수 있다. 국제정세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어느 정도 모호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만약 외부 압박이 거세질 경우, 독일의 실태조사처럼 객관적 의사결정 절차를 밟음으로써 시간을 벌고 대응논리를 개발하는 전략이다. 중장기적으로는 기술종속과 데이터 안보이슈에서 자유로울 수 있게 자체적인 기초·기반 기술 개발에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최근 코로나19 진단키트를 개발한 5개 국내 회사 중 4개사가 국가 연구개발 예산을 지원받아온 회사다. 장기적 안목에서 진행해온 투자가 코로나19 사태로 결실을 맺은 것처럼, 향후 닥칠지 모르는 제2, 제3의 화웨이 사태에 체계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긴 호흡의 준비가 필요하다. 화웨이 이슈를 화웨이 이슈 이상으로 볼 수 있는 혜안이 필요한 때다.

안준모 서강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

서울대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하고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기술경영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강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학과장과 기술경영연구소장을 맡고 있으며 중소기업청, 과학기술부, 미래창조과학부 등에서 근무하며 다양한 과학기술혁신정책 수립에 참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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