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항공을 살리려면 불확실성부터 줄여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경영 주체가 아시아나 사장인지, 박삼구 전 금호그룹 회장인지, 정몽규 HDC그룹 회장인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은 지난 20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아시아나 매각의 조속한 마무리를 위해 무슨 일이든 하겠다”며 이 같이 강조했다.
사실 이 회장은 다음달 10일 임기 만료를 맞는 '말년 CEO'다. 2017년 9월 취임 이래 그는 금호타이어, STX조선해양 등 굵직한 구조조정을 원활히 해결했고, GM의 한국시장 철수도 막았다. 20년을 끌어온 대우조선해양 매각도 가시화시켰다. 전임 회장들이 10년 넘게 풀지 못한 숙제를 3년 임기 동안 해결한 셈이다.
그런데도 그는 이날 아시아나 문제 해결을 위해 정몽규 회장에게 세 번째 만남을 제안했다. 그는 "임기 중에는 그저 최선을 다할 뿐"이라며 시중에서 제기하는 연임 가능성을 굳이 부인하지 않았다.
-곧 정몽규 회장을 만난다. 뭔가 담판을 짓는건가.
“이번주나 다음주쯤 만나려 한다. 담판이 '아시아나를 살지 말지' 결정하는 거라면, 그 자리에서 결과를 얻긴 어려울 것이다. 다만 현재 아시아나의 상황을 감안하면, 매각 결정을 더 끌 여유가 없다. 정 회장과 만나 현산이 원하는 게 뭔지, 지금 뭐가 문제인지 들어보고 협상의 여지가 있는지, 우리 쪽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지 등을 이야기 하려고 한다. 매각과 관련된 남은 일정을 담판 짓는 게 목표다."
-현산 측은 12주간의 재실사를 요구하고 있는데.
"이미 7주간 실사를 했다. 재실사는 안 된다. 다만 코로나로 상황이 변한만큼 그 영향을 평가할 재점검 정도는 수용할 수 있다. 그러나 상황 변화라는 것도 잘 생각해봐야 한다. 아시아나의 질적인 부분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양적 측면에선 유동성(대출)이 들어가며 변화가 있었지만, 이는 아시아나의 미래를 어떻게 예측하느냐에 달렸다. 최근 화물운송으로 잘 버티고 있는데, 코로나로 세계 항공업이 재편된 이후 오히려 기회를 잡을 수도 있다. 미래에 대한 판단은 전적으로 인수자의 몫이다."
-대우조선 매각 작업이 생각보다 길어진다.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 인수 관건인 유럽연합(EU)의 기업결합 심사가 생각보다 길어지고 있다. 중단된 건 아니다. 사안이 중대한 만큼 신중히 검토하는 것이다. 연말까지는 어떤 결론이든 날 것으로 보고 있다."
-만약 합병 승인을 받지 못하면?
“매각 무산이다. 그럴 경우, 나도 책임지겠지만 많은 사람이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대우조선 노조와 지역 단체들은 매각을 조직적으로 방해해 왔다. 이들은 ‘빅3(현대중공업ㆍ대우조선해양ㆍ삼성중공업) 체제’가 오히려 낫다고 주장하지만, 대우조선은 2015년 이후 실질적인 이익을 낸 적이 없을만큼 이미 경쟁력을 잃었다. 합병이 실패한다면 대규모 다운사이징이 불가피하고, 그것으로도 안되면 그 다음 수순은 문을 닫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산은은 1원도 지원할 수 없다."
-쌍용차에는 '생즉사 사즉생'을 강조했다.
“그간 마힌드라는 쌍용차에 6,000억원 이상을 넣으면서 단돈 1원도 가져가지 않았다. 일각의 ‘먹튀’ 프레임은 말이 안되는 얘기다. 쌍용차는 기술력도, 브랜드파워도 낮으니 줄일 건 인건비 밖에 없는 상황이다. 생산비용이라도 줄여야 외부에서 입질이 오지 않을까. 죽을 각오로 임금을 절반으로라도 줄이겠다는 각오를 보인다면 잠재 매수자가 그나마 매력을 느끼지 않겠느냐는 의미다."
산업은행은 '넥스트 라운드'라는 스타트업 투자유치 플랫폼을 통해 1조8,000억원 이상의 투자 유치에 성공한 대한민국의 대표적 벤처투자 기관이기도 하다. 이 회장은 임기중 주요 성과로 마켓컬리, 왓챠, 집닥 등 국내 대표 스타트업을 배출한 점을 들었다.
-넥스트 라운드는 전임 회장이 시작한 프로그램인데.
“혁신기업 육성은 산은의 주요 설립 목적이기도 하다. 넥스트 라운드는 2016년 시작됐지만, 벤처 육성에 좋은 수단이라 여겨 임기 중에도 그대로 계승, 발전시켰다. 4년간 1,357개 기업이 기업설명회(IR)에 참여해 313개 업체가 1조8,156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산은도 82개 기업에 1,539억원을 투자했다."
-BTS의 주주이기도 한데.
"방탄소년단이 소속된 빅히트엔터테인먼트에 산은이 출자한 4개 펀드 269억원이 투자됐는데 2,133억원을 회수했다. 8배 가까운 이익을 본 셈이다. 이 중 산은 출자분은 120억으로, 751억원이 회수됐다."
-혁신성장을 더 발전시키려면.
“굳은 사고방식부터 바뀌어야 한다. 그간 대출을 하려면 설비와 물건, 장부가 있어야 했다. 급성장하는 마켓컬리에 대출을 추진하면서 4차 산업혁명 시대 주요 자산인 '고객 데이터'를 담보로 잡겠다고 했더니, 데이터 원부(原簿ㆍ원장부)가 있어야 담보 물건으로 잡을 수 있다는 거다. 그런데 데이터에 무슨 원부가 있나.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는 방향으로 대출을 추진 중이다.”
-시장에선 연임 가능성을 높게 점친다.
“내가 이야기할 사안은 아니다. 사실 3년 임기를 채울 거라 생각도 못했다. 취임 후 8개월 만에 금호타이어를 법정관리에 넣으면서 사표를 내려 했는데, 의외로 더블스타가 나타나 해결됐다. 지금은 가급적 빨리 아시아나 문제를 해결하는 게 내 역할이다.”
진행=김용식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