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외교정책을 총괄하는 양제츠 국무위원이 21일 한국을 방문했다. 양 위원의 방한은 올해 중 성사가 논의됐지만 코로나 확산 때문에 진척이 없었던 시진핑 국가주석 방한을 조율하려는 목적이 크다. 한반도 안보 문제에도 방점이 없지 않다. 게다가 북한은 김정은 통치 체제에 변화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동생인 김여정에게 일부 권한을 위임했거나 내각을 집단 통치체제와 유사한 형태로 재편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시 주석의 방한은 한중 동반자 관계의 성숙을 위해서는 물론이고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사드) 배치로 생긴 앙금 등 불편한 양국 관계를 털고 가기 위해서도 필수적인 과정이다. 문제는 최근 중국과 미국의 갈등이 악화일로인 데다 남중국해 군사 충돌 가능성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양 위원의 방한은 중국을 편드는 우방을 늘리려는 노림수가 없지 않다.
방한 직전 양 위원이 싱가포르에 들러 한 발언을 보더라도 이런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양 위원은 "중국은 싱가포르와 아세안 각국과 협력해 전략적 신뢰와 실무 협력을 강화하고 싶다"며 "경제 세계화와 국제사회의 공평, 정의를 수호하고 싶다"고 말했다. 중국이 평화와 안정, 발전, 번영을 위해 새로운 공헌을 하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국제적 약속 위반은 물론이고 홍콩의 민의에도 어긋나는 최근 홍콩보안법 도입을 볼 때 참으로 빈말이 아닐 수 없다.
한반도 문제 해결의 중요한 의사 결정권자인 중국과 원활히 소통해야 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전통적인 동맹 관계인 미국과 떠오르는 강국인 중국 사이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어떤 의사 결정을 내리느냐다. 두말할 것도 없이 중요한 원칙은 대의명분을 벗아난 두 강대국의 강요에 휘둘릴 이유는 전혀 없다는 점이다.
미국 대선 전까지 비핵화 협상이 유보된 상태에서 김여정 '위임 통치' 등으로 불거진 북한의 지배 체제 변화가 가져올 안보 불안도 주시하지 않을 수 없다. 전권을 건네지 않은 상황에서 동생인 김여정의 역할 분담이나 내각 책임 강화 등 개편은 '김정은 체제'라는 큰 틀에 변화는 없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김여정이 사실상 북한의 2인자라는 분석도 나오는 상황이고 보면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다.
여러 정황을 볼 때 다가온 미국 대선이 큰 변수임을 부인할 수 없다. 지난해 하노이 노딜 이후 '자력갱생'을 강조하는 북한은 전쟁 위험까지 몰아가던 2017년의 재판까지는 아니더라도 한반도 정세를 다시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임에 분명하다. 미중 갈등 또한 한반도 문제의 직접 당사자인 4개국 남북미중이 적극적으로 대화에 나서도록 하는데 걸림돌이다.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 운전자론은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기름이 떨어져 움직이지 못하는 자동차의 운전대를 잡고 있는 형국과 다름없다. 당분간은 위기 관리에 집중하면서 대화 정세가 마련될 때 이를 추동할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