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랍고 무서운 GPT-3

입력
2020.08.21 11:11
23면

스파이크 존스 감독의 ‘그녀’(Her, 2013년)는 사랑스러우면서도 쓸쓸한 영화다. 이 작품은 홀로 살아가는 남자가 PC 속의 인공지능(AI) 사만다와 사랑에 빠지는 내용이다. 사만다는 비록 실체가 없는 AI이지만, 사람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대화 능력 덕분에 남자의 사랑을 얻는데 성공한다. 영화를 보면서 과연 저럴 수 있을까 싶었는데 최근 벌어진 일들을 보면 생각보다 빨리 현실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IT 업계는 GPT-3 때문에 발칵 뒤집혔다. GPT-3는 지난 6월 발표된 자연어 처리 기반의 AI 이름이다. 쉽게 말해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AI라는 뜻이다. 개발한 곳은 '오픈AI'라는 미국의 비영리 AI연구소다. AI의 부작용을 우려한 일론 머스크와 샘 알트먼이 공동 설립한 곳이다. 역설적이게도 AI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려고 설립한 이 곳에서 세상을 깜짝 놀라고 걱정하게 하는 AI가 등장한 것이다.

전 세계 AI 전문가들은 지금까지 GPT-3를 사용해 보고 알아낸 기능들을 인터넷에 속속 올리고 있다. 우선 GPT-3는 스스로 프로그램을 개발할 줄 안다. 사람이 이런저런 기능을 가진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달라고 문장을 입력하면 알아서 해당 기능을 가진 소프트웨어를 개발한다. 아이콘 디자인까지도 주문하면 알아서 그려준다. 이렇게 되면 더는 프로그램 개발을 위해 코딩을 배울 필요가 없을 수도 있다.

GPT-3는 심지어 소설도 집필한다. 주제를 던져 주고 소설을 써달라고 주문하면 스스로 근사한 소설을 완성한다. 이메일도 대신 써주고 농담까지 구사한다. 예를 들어 이메일에 꼭 들어가야 할 단어 몇 가지만 지정해 주면 격식을 갖춘 이메일을 그럴듯하게 써낸다. 또 사진을 보여주면 재미있는 말을 붙여서 소위 ‘웃기는 짤방’까지 만들어 낸다. 과연 AI가 만든 글이 사람에게 통할까 의심할 수 있는데, 설문 조사 결과 응답자의 88%가 GPT-3의 글을 사람이 쓴 것으로 착각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GPT-3를 악용할 경우 가짜 뉴스가 대량 생산될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진위 여부를 가려내기 힘든 정교한 가짜 뉴스로 충분히 많은 사람을 속이고 세상에 혼란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GPT-3의 놀라운 능력은 언어의 이해에서 비롯된다. 지금까지 기계는 사람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사람의 말을 기계가 알아듣도록 기계어로 바꿔주는 작업을 한다. 이를 코딩이라고 한다. 그런데 GPT-3는 코딩을 거치지 않은 사람의 말을 직접 이해한다. 한 가지 '흠'이 있다면 아직까지 GPT-3는 영어만 알아 듣는다는 정도. 오픈AI는 현재 개발자들에게 GPT-3를 공개했는데 좀 더 정교하게 다듬어 일반에 판매할 계획이다. 그러나 비영리를 표방한 오픈 AI가 GPT-3를 상업적으로 판매하는 것을 두고 또 다른 논란이 일고 있다.

뛰어난 능력의 AI를 볼 때마다 사람들은 감탄과 두려움이라는 양가적 감정을 느낀다. 인류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와 위협일 수 있다는 우려가 동시에 든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프로토콜, 즉 규약이다. AI를 인류에게 도움되는 방향으로 발전시키고 무엇을 막아야 할지 범국가적 논의가 필요하다. 마침 우리는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등 15개국이 참여해 지난 6월 발족한 국제협의체인 AI 글로벌 파트너십(GPAI)에 참여하고 있다. 이제 AI의 올바른 발전 방향을 모색해야 할 때다.



최연진 IT전문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