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의 그림 문자

입력
2020.08.21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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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생각에 꼴(形)을 주어 눈에 보이도록 하기 위하여 쓰는 표(부호)를 글자(문자)라 하느니라.” 문자에 대한 최현배 선생의 정의이다. 생각에 꼴을 주는 가장 원초적인 방법은 생각한 것을 그려서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림이 문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각자가 생각하는 대상의 꼴은 서로 다를 것이므로 내가 생각한 것을 상대방이 정확히 받아들일지는 불확실하다. 강을 그려서 보여줬는데 상대방이 지렁이라고 받아들이면 문자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꼴에 대한 약속이 필요하다.

약속한 그림은 문자가 된다. 이 문자는 아직도 존재하는데, 공중화장실에 붙어 있는 남자/여자 그림이 대표적이다. 그걸 이해하지 못해 잘못 들어가는 사람은 없으니 문자로 손색이 없다. 이것을 ‘그림 문자’라고 한다. 그림 문자는 상형 문자ㆍ표의 문자(한자), 음절 문자(일본의 가나 문자), 음소 문자(알파벳)로 진화했다. 문자는 구체적 그림에서 멀어지고 추상적 약속으로 나아간다. 그 역사를 종합하여 개발된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진화한 형태의 문자이다. 그렇다고 하여 문자에 우열이 있다는 것은 아니다. 누구에게나 자기 나라의 문자는 어느 문자보다도 소중하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보면 오늘날은 도상(아이콘), 다시 말해서 그림 문자의 시대이다. 컴퓨터의 발달이 역설적으로 원초적인 언어를 부활시켰다. 컴퓨터상의 기능 단추는 그림만으로 쓸모를 알려준다. 그중 재미있는 것은 20세기의 유물인 디스켓이 그려진 ‘저장하기’ 단추이다. 청소년 대부분은 그게 무슨 그림인지 모른 채 쓴다고 한다. 그림은 사라지고 약속만 남은 셈이다.

강미영 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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