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특별재판부가 라피크 하리리 전 레바논 총리 암살 사건이 이슬람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나 시리아와 연관성이 없다고 18일(현지시간) 결론지었다. 이슬람 수니파인 하리리 전 총리를 포함해 21명이 대규모 차량 폭탄테러로 사망한 지 15년 만이다. 이 암살 사건은 레바논 안팎의 정세를 뒤바꿨다. 정적에 의한 암살로 보는 의혹이 계속되면서 정파 대립은 더 극심해졌다. 이번 재판은 레바논은 물론 중동 정세에 깊이 개입하고 있는 서방 국가들에게도 관심을 받았다. 최근 벌어진 베이루트 대규모 폭발 참사로 정국이 혼란한 레바논의 미래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APㆍ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유엔이 후원하는 특별재판부는 하리리 전 총리 암살 공모 혐의 등을 받는 헤즈볼라 대원 4명 중 주범 1명에게만 테러 행위 공모 등 6개 혐의에 유죄 판결을 내렸다. 나머지 3명은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 판결 받았다.
유무죄 판결을 하기 전 데이비드 레 재판장은 이 사건의 헤즈볼라 등의 개입설에 대해서도 거론했다. 레 재판장은 "헤즈볼라 지도부와 시리아 정부에 하리리 총리 암살 동기가 있다는 견해가 있으나 직접적인 증거가 없다"고 말했다. 수니파인 하리리 전 총리는 미국과 걸프만 아랍 동맹국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 친이란ㆍ시리아 세력과는 대립했다. 이 때문에 헤즈볼라 등에 의심의 화살이 향했다. 사실상 피고인 4명에 대한 유무죄 판결보다는 헤즈볼라 등과의 연관성에 국제 사회가 주목했던터라 개입설을 일축한 판결 내용은 매우 중요한 대목이다.
앞서 2014년 유엔 지원으로 하리리 전 총리의 자살 폭탄 암살 사건에 대한 국제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이달 4일 벌어진 베이루트항의 대규모 폭발 참사로 인해 한 차례 미뤄진 최종 판결이 이날 진행됐다.
이번 판결은 폭발 참사 이후라는 시점상 레바논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헤즈볼라에게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AP는 이와 관련 "(베이루트 폭발 참사 이후) 레바논 내에서 압박을 받고 있는 헤즈볼라에게 좋은 소식"이라고 설명했다. 레바논 내전 과정에서 이란의 지원을 받으며 성장한 헤즈볼라는 의회에도 정식으로 진출한 주요 정치세력이다. 6,000명 가까운 사상자를 낸 대규모 폭발 사고 이후 기성 정치 세력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면서 '헤즈볼라의 위기'를 점치는 분석이 주를 이뤘던 상황이다.
중동매체 알자지라방송은 "이번 판결은 레바논의 반헤즈볼라 정서에 기름을 부을 수 있다"고 전했다. 힐랄 카샨 아메리칸베이루드대 교수는 "아무도 이 고도로 훈련된 이들이 자기 멋대로 공격을 감행했다고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특히 정부를 불신하는 국민들이 이번 폭발 참사에 대해서도 국제적인 조사를 요구하고 있으나 헤즈볼라와 긴밀한 미셸 아운 대통령과 그 세력이 이를 막고 있는 상황과 연결되면서 정부에 대한 민심이 더 악화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다.
물론 반대 의견도 적지 않다. 로이터는 "이 사안에 대한 레바논 사회의 의견이 매우 복잡하게 표출되고 있다"면서 "정치적 양극화를 이번 판결이 더 악화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