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라토너의 '위대한' 기록

입력
2020.08.20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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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구리 시조의 마라톤(8.20)



일본의 올림픽 데뷔 무대는 1912년 제5회 스톡홀름 올림픽이었다. 아시아의 데뷔이기도 했다. 선수단은 달랑 두 명, 육상 단거리의 미시마 야히코와 마라톤의 가나구리 시조(金栗四三, 1891.8.20~ 1983.11.13)였다.

배로, 시베리아 횡단열차로 꼬박 20일이 걸리는 여정이었다. 컨디션 조절은커녕 먹는 것부터 부실했다. 쌀도 된장국도 없었다. 차도 없어 둘은 숙소에서 경기장까지 걷거나 뛰어다녀야 했다. 밤도 없었다. 고위도의 백야(白夜)를 경험한 것도 당연히 난생처음이었다. 야히코는 100m, 200m 예선에서 탈락했고, 400m 준결선은 기권했다.

가나구리 시조는 일본 선발전에서 당시 마라톤 구간 40.225km를 2시간 32분 45초에 주파했다. 세계기록은 1909년의 2시간 40분 34초였다. 시조는 비공인 세계기록 보유자였다.

마라톤은 7월 섭씨 40도의 혹서 속에 치러졌다. 선수 68명 중 34명이 기권했고, 1명이 열사병으로 숨졌다. 시조도 33.3km 지점에서 졸도했다. 당시 올림픽은 '순수'한 만큼 허술했다. 한 농민이 쓰러진 그를 데려가 보살폈다. 다음날 깨어난 시조는 조직위에 통보를 해야 한다는 사실도 모른 채, 패잔병처럼 혼자 귀국했다. 그는 1920년과 1924년 올림픽에 출전했지만 끝내 메달을 따진 못했다. 하지만 일본 마라톤 발전과 선수 양성에 헌신했다. 1936년 베를린의 손기정과 1951년 보스턴 우승자 다나카 시게키가 그가 개발한 마라톤화 '가나구리 다비(足袋)'를 신고 달렸다. 그는 '일본 마라톤의 아버지'라 불린다.

1967년 3월 스웨덴은 올림픽 55주년 기념행사에 시조를 초청했다. '행방불명'된 마라토너의 완주를 요청한 거였다. 혹한의 추위에 코트를 입은 75세 마라토너는 트랙 한바퀴를 돌고 결승 테이프를 끊고, '54년 8개월 6일 32분 20초'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달성했다. 그는 "실로 먼 길이었다"고, "그사이 손자를 5명이나 두었다"고 말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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