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정가제는 출판계 기득권 보호하는 특혜… 소비자 희생 강요 말라"

입력
2020.08.1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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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정가제 폐지 주장하는 '완반모' 배재광 대표

편집자주

온전히 품지도 못하고, 온전히 버릴 수도 없는 계륵 같은 존재. 도서정가제 얘기다. 좋은 책이 많이 나오려면 저자도 출판사도 서점도 함께 살아 남아야 한다. 도서정가제는 출판 생태계를 지탱하는 최후 보루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당장 책값이 좀 더 저렴해지길 바란다. 3년마다 돌아오는 재검토 시한(11월 20일)을 앞두고 도서정가제 찬반의 입장을 들어봤다.

지난해 10월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도서정가제 폐지를 촉구하는 글이 올라왔다. 도서정가제가 출판 생태계를 지키고 다양성을 키운다는 본래 취지와는 달리 창작자(저자), 출판사 서점에 모두 도움이 안 되고, 소비자들은 가격 부담 때문에 책을 멀리하게 됐으니 폐지하란 주장이었다. 2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동의하며 도서정가제 논란에 불을 붙였다.

청원글 작성을 주도한 사람은 '완전도서정가제를 반대하는 생태계 준비 모임'(완반모)을 이끌고 있는 배재광 대표다. 그는 책의 ISBN 바코드를 바로 찍어서 모바일로 결제하는 플랫폼 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때문에 출판계에선 그가 본인의 사업 시장 개척을 위해 도서정가제를 의도적으로 흔들고 있다며 진정성에 의심을 품고 있다. 배 대표 역시 크게 부인하지 않는다. “도서정가제는 출판계 전체를 보호하는 게 아니라, 대형 온ㆍ오프라인 서점과 대형 출판사 등 출판계 기득권을 위한 특혜일 뿐입니다. 고인 물을 거둬내기 위해선 혁신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는 도서정가제 폐지 논리로 '혁신'을 거론했다.

'도서정가제'는 무엇
출판사가 책정한 정가대로 서점에서 판매하는 제도. 다만 우리나라에선 책을 판매할 때 일정수준 이하로 할인을 못하게 하는 제도로 통용되고 있다. 무분별한 가격 경쟁으로 출판생태계가 흐트러지는 걸 막기 위해 2003년부터 법제화됐다. 현재는 정가의 15%(10% 가격할인, 5% 마일리지 적립 등 경제상 이익) 안에서만 할인하도록 정해놨다. 3년마다 재검토 절차를 밟아 폐지 또는 완화, 유지 등의 조처를 취하기로 돼 있는데 11월 20일까지가 합의안 도출 시한이다.

책이 단순한 공산품 같은 소비재가 아니라 제도로써 보호해야 할 일종의 ‘문화적 공공재’라는 인식은 우리 사회에서도 통용되고 있는 당위다. 하지만 배 대표의 생각은 다르다. 책이란 특수성은 인정하지만, 시장경제의 관점을 무시하고 존재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책도 다른 일반 소비재와 같이 공정거래법에 따라 적용해야 한다는 논리다.

배 대표는 도서정가제 '무용론'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로, 먼저 신인 작가들의 종이책 등단이 줄었다는 점을 댔다. 국민들의 도서 구입비가 꾸준히 감소하고 있는 것도 도서정가제 탓이라고 했다.

그러나 출판전문가들은 "지나친 비약"이라고 일축한다. 당장 신인작가들이 종이책 대신 전자출판으로 넘어가는 것은 새로운 시장 수요에 따른 것이고, 국민들이 책을 멀리하는 것 역시 유튜브나 넷플릭스 등 여가 문화가 다양해진 배경 때문인데, 이를 무시하고 도서정가제만 물고 늘어지는 건 앞뒤가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배 대표가 가장 문제점으로 꼽은 건 구간(舊刊)에도 할인 제한을 두는 거다. “모든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 순 없잖아요. 지금 출간되는 책의 20%, 30%가 폐기되고 있는 상황이에요. 출간된 지 오래된 책들의 가격을 낮춰 소비자들 눈에 띌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하는데 그게 안 되니, 숨구멍을 막고 있는 거죠. 대형 출판사들은 버틸지 몰라도, 영세출판사들 입장에선 재고 처리가 어려워져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어요.”

이에 대해 출판계에선 구간 할인을 무제한으로 풀어버릴 경우 가격 경쟁이 심화돼 현재보다 대형 출판사나 서점들의 독과점이 더욱 심화할 것이라 반박한다. 실제 구간의 무제한 할인을 허용했던 2014년 이전 ‘90%로 후려치기' '1+1끼워팔기’ 등이 판을 쳤고, 자본력 있는 대형 서점과 출판사를 제외한 다수의 영세서점과 출판사는 퇴출 위기에 처했다.

배 대표는 지역서점과 독립서점을 살리는 방안을 두고도, 도서정가제를 강화하는 것보다 공급률(출판사가 거래처에 책을 공급하는 정가 대비 비율)을 손보는 게 우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형 온라인서점엔 유리하게, 영세 지역서점엔 불리하게 책을 납품하지 못하도록 불공정 행위를 바로 잡는 게 더 효과적이란 주장이다.

“언제까지 출판계의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해 소비자가 희생을 강요당해야 하나요. 도서정가제가 꼭 아니어도 출판 생태계는 얼마든지 활성화시킬 수 있습니다."

강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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