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동' 된 문 대통령과 국방부… 왜 '현무-4'라고 못 부르나

입력
2020.08.1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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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알면서도 말 못하는 ‘무기 비밀주의’

편집자주

2014년 잠시 연재했던 ‘정승임의 궁금하군’을 다시 새롭게 시작합니다. 군 세계에 정통한 고수보다는 ‘군알못’(군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는 글을 씁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정경두 국방부 장관이 졸지에 '호부호형'을 하지 못한 ‘홍길동’ 신세가 됐습니다. 최근 “세계 최고 수준의 탄두 중량을 갖춘 탄도미사일 개발에 성공했다”는 사실을 공공연히 밝혔지만 정작 그 미사일 이름이 무엇인지 함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언론은 날마다 ‘현무-4’라고 대서특필하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현무-4의 존재를 언급한 방식부터 특이합니다. 지난달 23일 현무-4를 개발하는 국방과학연구소(ADD)를 방문한 문 대통령은 “세계 최고 수준의 중량을 갖춘 탄도미사일 개발을 축하한다”고만 했습니다. 이후 정 장관(8월 5일 ADD 50주년 기념식)과 국방부(8월 10일 국방 중기계획 보도자료)도 한 목소리로 “독자 기술로 세계 최고 수준의 중량을 갖춘 탄도미사일 개발에 성공했다”고 마치 ‘복붙’한 듯한 메시지를 냈습니다. 어디에서도 미사일 이름은 들리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한 홍길동처럼, 현무-4를 현무-4라 부르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현무-4 개발이 극비리에 추진되는 국방부의 ‘비닉(祕匿) 사업’이기 때문입니다.


비닉사업이 무엇이길래… 현무-4는 왜 비밀리에 추진하나

숨길 비(祕)와 숨길 닉(匿)을 쓰는 비닉 사업은 말 그대로 ‘추진 과정이나 획득 내용을 철저히 비밀에 부치는 비공개 사업’입니다. 방위사업추진위원회(방위사업 결정기구) 위원장인 국방부 장관이 지정하는 극소수만 해당 사업의 추진 여부와 그 과정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사업명도 구체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예산 편성과 심의도 비공개로 이뤄집니다. 관련 내용을 누설하면 군사기밀 유출로 처벌도 받을 수 있습니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으로 보이지만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조차 현무-4라는 미사일 이름을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실제로 취재 차 접촉한 군 당국자들은 “현무-4에 대해 문의할 게 있다”는 질문에 대부분 손사래를 치거나 곤란하다는 듯한 입장을 보였습니다. 다만 국방부가 중기계획에 현무-4를 간접적으로 언급할 수 있었던 것은 앞서 문 대통령이 ADD 발언으로 ‘이 정도 수준의 언급은 가능하다’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했기 때문으로 관측됩니다.

비닉 사업의 명확한 선정 기준은 알려진 게 없습니다. 군 수뇌부의 전략적 판단과 주변국 반발 등 외교안보적 상황이 크게 작용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특히 미사일이나 정찰위성 등 주변국을 자극하는 공격형, 감시형 무기는 가능하면 비밀리에 추진하는게 정석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무슨 무기’를 들고 있는 지, 적에게 알려 미리 대비하게 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지요.

2톤짜리 무거운 탄두를 달고 800㎞를 날아가 지하 100m의 목표물을 정확히 타격하는 ‘가분수 괴물 미사일’인 현무-4가 비닉사업이 된 것도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단거리 미사일은 2톤 이상 탄두를 탑재할 경우, 머리가 무거워져 정확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통상 1톤 이하의 탄두를 탑재할 수 있게 설계합니다. 그러나 현무-4는 2톤짜리 ‘무거운 머리’로도 정확성과 파괴력을 입증해 보였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닙니다. 지하 100m 이상 깊이에 있는 것으로 알려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벙커를 비롯해 북한의 거의 모든 시설을 파괴할 수 있을 정도라고 합니다. 재래식 무기로 관통력 측면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때문에 이를 공개적으로 추진할 경우, 북한의 반발은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때 ‘핵잠수함’도 극비리 추진… ‘425 정찰위성’ 사업은 돌연 비공개

현재의 비닉사업과 동급으로 비교할 순 없지만, 노무현 정부 시절 비밀리에 추진했던 ‘핵 추진 잠수함 건조’도 일종의 비닉 사업으로 볼 수 있습니다. 2003년 6월 2일 조영길 당시 국방부 장관이 노 대통령에게 ‘핵 추진 잠수함 3척을 건조하겠다’는 계획을 보고해 일명 ‘362사업’으로 불리며 극비리에 진행됐지만 1년 만에 좌절됐습니다. 내부적으로는 잠수함용 원자로 개발과 핵연료 확보 문제가 발목을 잡았고, 언론 보도로 사업 추진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설상가상 북한이 2003년 1월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하고 영변 원자로를 재가동하면서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우리나라까지 사찰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한미원자력협정 등은 핵 연료를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기 때문입니다.

비닉사업은 아니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8월엔 송영무 당시 국방부 장관이 정찰위성 확보 사업인 일명 ‘425 사업’을 돌연 언론에 비공개하기로 결정해 논란이 됐습니다. 국방부는 방위사업추진위원회를 통과한 정찰위성 사업을 언론에 브리핑할 예정이었지만 송 장관이 비밀사업으로 언론 공개가 제한된다며 브리핑을 거부한 것입니다.


현 정부 들어 심해진 ‘무기 비밀주의’… “완전한 비밀무기는 없다”

전문가들은 군 당국의 ‘무기 비밀주의’는 너무나 당연한 전략이지만 “세상에 완전한 비밀 무기는 없다”고 말합니다. 무기 체계는 완성이 되면 드러나게 돼 있다는 겁니다. 치명적 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상대국에겐 위협이 되기 때문입니다. 수출용이 아닌 이상 무기 성능을 구체적으로 밝힐 필요는 없지만 전략적으로 흘릴 필요는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평생 비공개로 둘 것이라면 비싼 세금을 들여서 개발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다만 문재인 정부 들어 ‘무기 비밀주의’가 유독 심해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 견해입니다. 국방부는 지난해 3월부터 미국으로부터 스텔스 전투기인 F-35A를 들여오기 시작했지만, 전력화 행사를 비공개로 해 논란이 됐습니다. 올 4월엔 고고도 무인정찰기인 글로벌호크가 우리 군에 인도된 사실을 숨기다가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가 트위터에 관련 사실을 공개하면서 뒤늦게 알려졌습니다. 모두 북한에 위협이 되는 무기로 정부가 ‘북한 눈치보기에 급급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을 지낸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6월 북한의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이후 “돌이켜보면 (남북관계가 경색된 것과 관련해) 아쉬움이 남는 몇 가지 상징적 장면이 떠오른다”며 지난해 국군의날에 F-35A 등 첨단 무기를 공개한 사열 행사를 꼽기도 했습니다. 그랬던 정부가 이례적으로 현무-4 개발 성공 사실을 간접적으로나마 밝힌 이유는 무엇일까요.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는 “북한을 의식해 개발 과정은 비공개로 했지만, 시험 발사가 성공한 이상, 자주 국방 차원에서 우리의 미사일 능력을 과시할 필요를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신종우 한국국방안보포럼 전문연구위원은 “북한이 집중호우 수습 이후 안정기에 접어들면 미사일 도발 가능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우리도 북한의 군사위협에 충분히 대응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다”라고 분석했습니다.



정승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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