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역 모범국들도 흔들린다... 코로나19 재확산세 심각

입력
2020.08.1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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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청정국 선언' 뉴질랜드 총선 4주 연기
미국 사망자 17만명... 예측보다 6주나 빨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으로 공든 ‘방역탑’이 무너질 위기를 맞은 건 한국만이 아니다. 한때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선언했던 국가들도 최근 확진 환자가 급증해 비상이 걸렸다. 봉쇄 정책을 부활시키고, 선거 등 대규모 행사를 연기하는 등 감염 확산 차단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는 17일 기자회견을 통해 내달 19일 예정됐던 총선 일정을 10월 17일로 4주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아던 총리는 “코로나19 지역사회 감염이 다시 나타나면서 선거일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며 “선거관리위원회는 경보 2단계, 일부 지역은 3단계에서도 선거를 치를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확산 초기 약 5주간 고강도 봉쇄책을 시행한 뉴질랜드는 6월 8일 마지막 코로나19 환자가 퇴원하자 바이러스 종식을 선언했다. 그러나 이달 11일 102일 만에 원인 불명의 지역사회 감염자 4명이 나오면서 일상의 행복에 다시 금이 가기 시작했다. 아던 총리는 확진자 발생 직후 최대 도시 오클랜드 전역에 3단계 경보(봉쇄)를 내렸고 다른 지역도 2단계로 격상했지만, 이후에도 매일 십수 명씩 신규 감염이 발생했다. 현재 뉴질랜드의 진행성 감염자는 78명으로 불어난 상황이다.

뉴질랜드와 함께 방역 모범국으로 꼽혔던 홍콩과 싱가포르에서도 경제활동 재개 후 코로나19 재확산세가 나타났다. 홍콩 정부는 지난달 31일 입법회(의회) 선거를 1년 연기했지만, 국민 건강보다는 정략적 유ㆍ불리를 따진 결정이라는 비판이 많다. 유럽에선 앞서 6월 “코로나19 첫 전투에서 승리했다”고 선언한 프랑스의 감염 확산이 심상치 않다. 봉쇄조치 완화와 여름 휴가철이 맞물린 탓이다. 이미 수도 파리를 비롯한 일부 지역이 위험지역으로 재지정된 상황에서 15, 16일 이틀 연속 하루 신규 확진자 수가 3,000명을 넘어 위기감이 최고조에 달했다. 엘리자베스 본 프랑스 노동장관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재봉쇄는 피해야 한다”며 “직장 내 마스크 착용 의무화를 추진하겠다”고 예고했다.

동남아시아 ‘코로나 청정국’들의 상황도 비슷하다. 베트남에서는 지난달 25일 중부 유명 관광지인 다낭에서 100일 만에 코로나19 국내감염 사례가 나타난 뒤부터 수도 하노이와 경제중심지 호찌민 등으로 재확산이 본격화했다. 이달 들어선 하루 신규 확진자가 10~30명씩 나오는 상황이다. 그간 베트남은 인구가 많고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음에도 사망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아 주목을 받았지만, 지난달 31일 첫 사망자 발생 이후 24명이 숨졌다. 6월 11일 동남아 최초로 코로나 종식을 선언한 라오스에서도 지난달 24일 102일 만에 확진자가 나왔다.

코로나19 최대 피해국인 미국의 상황은 악화일로다. 이날 국제통계사이트 월드오미터는 미국의 코로나19 사망자 수를 17만3,128명으로 집계했다. 앞서 미 워싱턴대 의과대학 보건계량분석연구소(IHME)는 미국 내 사망자가 17만명에 도달하는 시점을 오는 10월 1일로 예측했는데 6주나 빠른 속도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사태로 의료시스템에 과부하가 걸린 상황에서 가을 독감 유행철이 겹치면 의료 체계가 아예 마비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로버트 레드필드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 국장은 12일 언론 인터뷰에서 “국민들이 방역수칙을 지키지 않으면 최악의 가을을 맞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강유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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