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악을 용서한다"... 후배 정치인들에게 '신념'이 된 DJ 어록

입력
2020.08.17 13:48
18일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1주기


"'서생적(書生的) 문제 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을 함께 가져야 성공할 수 있다.' 존경하는 대통령님의 어록입니다. 저의 정치 좌우명입니다.” (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후보ㆍ16일 최고위원 후보자 호남권 합동연설회)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치인은 대중보다 반걸음 앞서가야 한다고 말씀했습니다. 정치인은 단순히 다수를 따라가는 역할만 해서는 안 됩니다.” (금태섭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ㆍ5일 한겨레신문 칼럼)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DJ)은 연설로 기억되는 정치인이다. 그의 연설을 듣기 위해 광장에 운집한 지지자들은 “전율”을 말하곤 했다. 광장에서 DJ에게 매혹된 청중 중에 직업 정치인이 된 후배들이 적잖다.

DJ는 망명, 연금, 수감 생활 중 사상의 지평을 확장했고, 많은 옥중사색을 남겼다. 최근까지도 많은 정치인들이 DJ가 옥중에서 벼린 문장 중 하나를 자신의 신념이자 좌우명으로 꼽는다. 특히 '정치의 본령'을 되새기는 순간이면 DJ의 문장을 돌이키곤 한다.

DJ 서거 11주기(18일)를 맞아 고인이 한국 정치사에 남긴 어록을 돌아봤다.


◇ “자유가 들꽃같이 만발하고”

“80년대는 자유가 들꽃같이 만발하고 정의가 강물처럼 넘쳐 흐르며 통일에의 희망이 무지개같이 아롱지는 시대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과 제가 이를 위하여 최선을 다함으로써 우리 세대가 우리의 후손들에게 자랑스러운 조상으로 기억되기를 충심으로 희망합니다.” (1980년 5월 관훈클럽 초청 연설문)


◇ “내가 바랐던 것은 선거”

“내가 중요시했던 것은 민주주의의 실현이었지 내가 대통령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때문에 나는 우선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했을 뿐이다. 검찰에서는 내가 정상적인 방법으로 정권을 잡을 수 없어 학생 데모를 통해 집권하려 했다고 공소장에서 말하고 있으나 나는 총 한 방 쏠 줄 모르는 사람이다. 내가 제일 바랐던 것은 선거였으며, 선거만 순조롭게 이루어진다면 집권할 수 있거나 그렇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4년 후를 대비한 튼튼한 기반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1980년 11월 9일 군사재판 법정 최후 진술)

◇ “나에 대한 모든 악을 일체 용서한다”

“나는 박정희 정권 아래서 가장 가혹한 박해를 받은 사람이지만, 나에 대한 모든 악을 행한 사람들을 사랑과 용서의 뜻에 따라 일체 용서할 것을 선언했다. 나는 지금 나를 이러한 지경에 둔 모든 사람에 대해서도 어떠한 증오나 보복심을 갖지 않으며 이를 하느님 앞에 조석으로 다짐한다.” (1980년 12월3일 김대중 전 대통령 옥중수필)


◇ “서생적(書生的) 문제인식과 상인적 현실감각”

“내가 6대 국회의원이 되고서 신문에 “우리는 서생적 문제인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을 아울러 갖추어야 한다”고 말해서 자주 보도된 일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어느 분야에서나 성공하려면 서생과 같이 양발을 원칙 위에 확고하게 딛고, 상인과 같이 양손은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두 가지의 조화로운 발전을 기해야 합니다.” (1981년 6월 청주교도소에서 이희호 여사에게 보낸 옥중서신)


◇ “국민보다 반 발짝 앞서 나가야 한다”

“운동하는 사람은 대중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 대중이 못 따라오면 서서 기다려야 하고 설득해야 하고 왜 안 따라오는지 배워야 한다. 네가 안 따라오는 것이 네 잘못이라고 하면서 혼자 앞으로 가면, 대중으로부터 유리되고, 그렇게 되면 통일이나 민주주의를 원치 않는 사람들한테 악용만 당하게 된다.” (1982년 청주교도소 옥중사색)


◇ “정치는 예술이다”

“진정한 정치가 할 일은 억압받는 자와 가난한 자의 권리와 생활을 보장하고 그들을 정치의 주체로 참여케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에서 억압하던 자들도 빼앗던 자들도 그들의 죄로부터 해방시켜서 대열에 참여케 해야 한다. 그 점에서 정치는 예술이다.” (1982년 청주교도소 옥중사색)

김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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