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미국 대선이 점점 다가오고 있는데도 ‘우편 투표’가 계속 말썽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연일 반대하는 상황에서 연방우체국장의 투표 방해 의혹까지 불거졌다. 우체국장이 트럼프 대통령 측근이라 투표를 훼방 놓기 위해 서비스 기능을 약화시켰다는 게 민주당 측 주장이다. 우편 투표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면서 서비스 자체마저 정치 쟁점으로 떠오른 형국이다.
미 CNN방송은 14일(현지시간) 연방우체국(USPS) 감사관이 루이 드조이 연방우체국장이 최근 내린 조치 등에 대해 감찰을 벌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 등 민주당 의원 9명이 최근 USPS 감사관에게 우체국장 조사 개시를 촉구한 데 따른 것이다.
올해 5월 우체국 총책임자가 된 드조이 국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이자 공화당 거액 기부자다. 물류업체 뉴브리드로지스틱스 최고경영자(CEO) 출신인 그는 우체국장 취임 후에도 회사 주식 3,000만달러를 보유하고, USPS 경쟁사인 아마존의 스톡옵션도 사들여 이해충돌 비판이 제기됐다. 특히 그가 지난달 비용 절감을 이유로 초과근무를 없애고 우편 분류 기계의 10% 가량을 감축해 우편 서비스 기능이 현저하게 떨어졌다는 논란에 휩싸여 있다. 일간 뉴욕타임스는 “미 전역 곳곳에서 우편 배달이 지연되고 서비스가 축소됐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우편 투표를 반대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측면 지원하기 위해 우편 서비스의 질을 고의로 떨어뜨렸다는 게 민주당의 공격 논리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민주당 측 주장은 신경도 쓰지 않는 눈치다. 오히려 15일 기자들과 만나 “(초과근무 폐지는) 수년간 발생한 엄청난 손실을 막으려는 것”이라며 “매우 재능 있는 사람이다”라고 드조이 국장을 적극 두둔했다. 드조이 역시 최근 직원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일시적인 배달 지연은 업무 효율성을 높이려는 조치에서 나온 의도치 않은 결과”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의도와 무관하게 결과적으로 배달 기능이 약화해 대선 투표일 전까지 우편 투표가 도착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실제 USPS는 최근 46개주와 워싱턴 DC에 보낸 서한에서 “투표 용지가 개표 시점에 맞춰 도착한다고 보장할 수 없다”면서 더 많은 준비 시간을 확보하라고 경고했다. 가뜩이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우편 투표 비중이 이전 대선과 비교해 10배 이상 폭증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마당에 상당량이 늦게 도착하면 대규모 법적 분쟁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11월 3일 대선 이후에도 승자를 선뜻 발표하지 못하는 ‘선거 재앙 시나리오’가 나오는 배경 중 하나다.
우편 투표는 일종의 조기 투표로서 미국 각 주(州)마다 규정이 다르다. 텍사스 등 일부 주에선 해외 근무나 질병 등 특정한 근거가 있어야 가능하지만, 사유 없이도 유권자가 먼저 신청하면 허용하는 곳도 있다. 콜로라도, 오리건 등은 아예 자동적으로 모든 유권자에게 우편 투표 용지 자체를 발송한다. 코로나19 확산 후에는 캘리포니아, 뉴저지, 네바다 등이 모든 유권자에게 투표 용지를 보내기로 했고, 애리조나 메릴랜드 뉴멕시코 등은 우편 투표 신청서를 발송할 계획이다. 일간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특정 사유 없이 전체 유권자의 우편 투표를 허용한 주는 현재 34곳에 이른다. 이 중 용지 자체를 보내는 곳도 11개주로 늘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투표 조작 가능성을 내세워 시종 우편 투표를 공격하고 있지만, 진짜 이유는 민주당 지지 기반이면서도 투표율이 낮은 흑인이나 젊은 층의 투표 확대를 우려하기 때문이란 게 중론이다. 그러나 코로나19로 투표장에 가기를 꺼리는 노년층 역시 우편 투표를 이용하는 점을 감안하면 선거 유ㆍ불리를 따지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패배 시 불복 명분으로 삼기 위해 우편 투표를 비난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표적 대선 경합주이면서 코로나19 재확산 발병 지역인 플로리다에 대해선 우편 투표를 권장하는 이중적인 모습도 보였다. WP는 지난해 9월 뉴욕 맨해튼에서 자신 소유의 마러라고 리조트가 있는 플로리다 팜비치로 주소를 옮긴 그가 정작 자신은 우편 투표를 신청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