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경쟁 교육의 대안으로 국제학교와 외국인학교에 관심을 갖는 학부모가 늘고 있지만, 누구나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외국인학교의 경우 외국 국적 또는 일정 기간 이상 해외 체류 등의 조건을 갖춰야 입학이 가능하고, 국제학교는 국적이나 외국 체류 기간 제한은 없지만 연간 4,000만~6,000만원의 학비가 들어간다. 이 때문에 학부모들은 상대적으로 진입 장벽이 낮은 미인가 국제학교로 눈을 돌리기도 한다.
미인가 국제학교는 교육부로부터 정식학교로 승인받은 곳이 아니다. 따라서 엄밀히 말해 학교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없고, 해당 교육기관의 교과 과정을 수료해도 국내 학력을 이수한 것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한국 대학에 지원하려면 따로 검정고시를 치러야 한다. 지난해 한국에 있는 국제교육기관 중 교육부로부터 인가를 받은 학교는 유치원과 고등교육기관을 포함해 53개뿐으로, 그 외에는 모두 미인가 교육기관이다. 업계에서는 300여개의 미인가 국제형 교육기관이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국내 학력으로 인정받을 수 없는데도 많은 학부모가 미인가 국제학교에 자녀를 입학시키는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해외 명문대 진학에는 큰 어려움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과 미국의 교육기관 관리시스템 차이에서 비롯된다. 한국은 교육부 허가에 기반한 인가 시스템인 반면, 미국은 정부가 아닌 비영리 인증기관의 ‘인증’ 여부로 학력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14일 서울 강남구에서 만난 미인가 A국제학교의 교장은 “인가와 인증 시스템을 혼동해선 안 된다. (자녀를 국제학교에 보낼 계획이라면) 교육부의 인가 시스템은 전부 잊어버리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에는 WASC, MSA 등 7개의 지역별 학력인증기관과 인증기관연합체격인 AdvancedED가 있고, 이들 기관에서 인증받은 학교를 졸업하면 한국교육부의 인가 없이도 해외 대학 입학에는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인가 국제학교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학비 역시 많은 학부모가 미인가 국제학교에 관심을 두는 이유다. 연간 2,000만원 안팎으로 제주 소재 국제학교와 비교해 많게는 4,000만원 저렴하다. A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은 “어차피 미국 대학 입학을 목표로 했기 때문에 국제학교에 진학해야 했는데, 굳이 비싼 학비를 내면서 인가 받은 국제학교에 갈 필요가 있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학교 측이 설명하는 말만 믿었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도 있다. 미인가 국제학교가 난립한 탓에 학교가 학생 유치에 애를 먹고 있고, 재정난에 허덕이다가 문을 닫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재학생들은 그동안 들었던 수업이 국내 학력으로 인정되지 않아 일반 학교로 전학을 갈 수도 없다. 실제로 지난해 경남 진주시에 위치한 한 미인가 국제학교가 재정난으로 문을 닫아 학생들이 무적 신분이 된 적도 있다. 당시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일반 학교 재취학 또는 청강을 요구하다 결국 다른 미인가 국제학교를 찾거나 홈스쿨링을 택했다.
미인가 국제학교가 지나치게 해외 명문대 진학에 초점을 맞추는 등 ‘사설학원화’ 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서울 소재 미인가 B국제학교의 소개책자에는 ‘1타 강사가 국제학교 선생님으로’ ‘유명 학원 강사의 강의를 방과후 수업으로’ 등의 문구가 실려 있다. 학부모들도 이 같은 교육 시스템을 은근히 반기는 분위기다. A학교에 자녀가 재학 중인 학부모는 “어차피 일반학교를 다녀도 방과후에 학원을 다녀야 한다”며 “학교에서 이를 모두 해결해주기 때문에 (미인가 국제학교 교육과정이) 오히려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현재 운영 중인 300여개의 미인가 국제학교 가운데 아예 미국의 학력 인증조차 받을 수 없는 교육기관들도 많다는 점이다. 업계에선 현재 미국 학력 인증을 받은 미인가 국제학교가 30곳이 안 될 것으로 보기 때문에, 자칫 해외대학 진학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다.
서울 강남에서 학부모들을 상담해온 국제학교 입시 컨설턴트는 “비영리 인증기관의 인증을 받지 않은 미인가 국제학교 졸업생들은 미국 상위권 대학에 지원할 때 고졸학력인증서(GED) 제출을 요구받을 수 있고, 독일과 싱가포르 대학에는 아예 지원조차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